매거진 Baum im Wind

광활한 대지와 설탕단풍

미완성의 땅으로

by 폐관수련인

다시 또 바다를 건너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넓고 넓은 땅 위에 유난히 발전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매우 넓은 평야와는 대조적으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흰 눈이 쌓인 산맥들이 보였다. Rocky였다.


이곳의 느낌은 2017년 가을, 미국 대륙을 하늘에서 보게 되었을 때와 같은 감상이었다.

구대륙이라 불리는 유럽에서 많이도 떨어진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분명 같은 사람의 종임에도, 또 다른 문명처럼, 미지와 조우하는 순간 같이 느껴졌다.


춥고 잔잔한 분위기 속에 배치된 조경들이 내가 원하던 곳과 맞아떨어져 마음이 편했다.

목숨을 걸고 온 만큼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러 왔다. 이 국가가 나의 마지막 일터였으면 좋겠다.


7개의 짐가방을 들고 이곳저곳 계속해서 걷고 또 걷고 목적지까지 향했다. 그나마 버리고 온다고 했음에도, 짐이 여전히 많았었다. 독일을 떠나기 전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몇 번 입어보지도 않은 옷들을 수거함에 넣었을 때다. 짐을 줄이기 위해 기부, 판매 등 가리질 않았는데, 아파트먼트 입구에 물건을 놓아두면 주민들이 가져갔다. 그런데 내 옷이 땅바닥에 흩어진 것을 보고 충격적이었다. 기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듯하다. 돈 몇 푼이 아까운 것보다 선의를 내비친다고 해서 다 좋은 결과를 보인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크게 와닿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경우는 일방적인 불도저니까 그런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탈것이 필요했다. 이 땅은 바퀴 달린 것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넓이 었다.

그런데 당장에 1~2 km의 애매한 거리를 택시 타고 가자니 구두쇠 마인드가 발동해서 직접 가보기로 했다. 리어카라도 있었으면 편하게 옮기기라도 하지 혼자서 이 짐을 옮기고 다니려니 땀이 이만저만 말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옮기면서 뭐가 좋은지 실실 잘만 웃어댔다.


작년 이 맘 때 즈음 학위 발표를 했었다. 당시 학위를 마치고 가족들과 체코를 돌며 한국으로 귀국했었는데, 프라하에서 빌었었던 소원이 이루어졌다. 딱 하루의 소원 유효기간을 남기고 내가 가장 바랐던 요소들을 모두 들어주었다. 이곳은 오로라도, 알프스 산맥도, 메이저리그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족들과 함께 말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행기가 이륙하니 눈물이 돌았었다. 선글라스가 깨져버려서 가릴 것도 없었는데, 친절하게도 내 눈물 너머로 승무원분이 기내식 주문을 받아주셨다. 몇 년을 홀로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 그리워서 이러는 건가 싶었는데, 그냥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믿어준 가족들에게 고마워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탈 없이 잘 있어준 것도, 이룰 수 있다고 응원해 줬던 기억들에 감정이 올라왔었다. 사실 당신의 아들이 어디를 가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떠들어댄 것보다 좀 더 잘하지 못했다는 것이 살짝 아쉬울 뿐이다.


나는 양금명이처럼 집안 기둥뿌리 다 뽑아가며 나 혼자 잘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들이 피 땀 흘려 모은 돈을 내 이기심에 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장학금이든 풀타임 계약이든 찾아대서 왔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나에게 쉽게 그들의 돈을 건네었다. 편하게 택시 타고 가라, 배곯지 말아라. 싸구려 사지 말아라. 그럴 때마다 나는 이들의 시간을 다 뺏어 쓰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야구를 참 좋아하신다. 이것도 내가 관찰해서 알게 된 거지, 생각해 보면 내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내비치신 적이 많지 않다. 아버지는 그나마 어머니보다 더 쉽게 표현을 하시곤 했지만, 야구장에 직접 가보신 적은 없다. 직접 가기에는 부담이 많이 되신 것 같다.

유채꽃 필 무렵이 생각나서 아버지께 넷플릭스를 결제해 드렸다. 그러더니 기간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다 보려고 1달 내내 틈만 나면 쉬지도 않고 보셨다고 한다. 진작 끊어드릴걸.


사실 부모님도 햄버거, 피자, 케이크, 파스타 다 좋아하시는데, 자식들 때문에 양보한다는 것 알고 있다.

이제는 안 그러셨으면 좋겠다. 동생이 있어서 그나마 이런 문화부류는 잘 챙겨드리지만, 나 혼자였다면 때가 다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을 것 같다.


나에게도 때를 놓치지 않고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먼 이국의 땅으로 꿈과 희망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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