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담화
우리나라에 허가된 약은 대략 4만 품목이 넘습니다.
제약사는 의약품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 각종 허가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의약품 규제당국에 품목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 제조 · 품질 기록에 관한 기록을 제출하고, 규제당국으로부터 품목의 안전성, 효과성과 품질을 입증받아야 합니다.
의약품 규제당국은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허가로 관리하는 항목을 설정합니다. 이 중에는 효능 · 효과도 있습니다. 제약사는 의약품을 허가받을 때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하게 되는데, 임상시험 결과를 검토해 품목의 효능 · 효과와 용법 · 용량을 정합니다. 다르게 얘기하면 의약품의 효능 · 효과는 임상시험에 근거하여 설정됩니다.
제약사는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임상시험은 굉장히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미국에서 2015~16년 허가받은 신약 56개 임상시험 결과를 분석한 발표 논문에 따르면 1개의 임상시험 당 1,900만 달러(한화 약 257억 원) 가량이 든다고 합니다. 이는 품목허가를 위한 임상시험(대게는 3상을 말합니다)이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임상적 효과의 관찰기간이 길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난관을 이겨내고 품목허가를 받았다면 의료현장에서 허가받은 효능 · 효과에 따라 많은 환자에게 사용되고 판매되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변수가 많습니다. 허가받은 효능 · 효과로 쓰이기에는 경쟁약이 너무 많거나, 비용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해 보험급여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사용방법 등 여러 문제로 의료현장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경쟁 대상보다 효과가 뛰어나거나 가격이 저렴해 판매가 순조롭다면 다행이겠지만, 세상은 내 생각대로만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제약사는 효능 · 효과를 추가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허가된 약의 효능 · 효과를 추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효능 ·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일정 수준 매출이 기대되는 약이라면 제약사는 쉽게 투자를 결정하겠지만 성공가능성이 불분명하거나 기대 매출이 낮은 의약품에 대해서 추가 임상시험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한편 의료현장에서 의약품은 허가사항대로 사용되지만은 않습니다. 진단 기술의 발달, 적극적 치료의 증가로 인해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의약품 개발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임상경험, 밝혀진 약물의 작용기전, 논문 등 문헌에 근거해 치료제가 없거나 새로운 치료방법이 필요한 환자에게 허가 범위를 벗어나 의약품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항암제가 그런 경우입니다.
의약품 규제당국 입장에선 이런 허가범위를 벗어난 효능 · 효과에 사용되는 의약품은 계륵입니다.
안전성과 효과성을 입증받지 못했으니 의료현장에서 사용을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치료제가 없는 환자에게 실낱같은 치료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대책 없이 금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대부분 제약 선진 국가에서 의약품의 허가사항을 벗어난 효능 · 효과 광고를 금지하고는 있지만, 전면 제한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일부 유럽국가가 부작용이 심해 문제 되는 경우에 한해 사용을 제한하거나 정보제공을 할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광고를 제한하고 있다는 측면은 비슷합니다만 보다 적극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의약품을 의사가 임의로 비급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허가사항을 벗어나 비급여로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토를 거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 의학적 타당성이 없거나 대체 약제가 있는 경우 정부 기관은 사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고혈압약으로 개발되었던 '프로프라놀롤'이란 성분의 의약품이 있습니다. 이 약은 교감신경을 억제시켜서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 맥박을 늦추고 흥분을 가라앉힌다는 입소문이 나며 이 약을 면접을 앞둔 취준생이나 수험생이 복용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약은 전문의약품이라서 쉽게 구할 수 없을 뿐더러 허가사항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오남용에 주의해야 합니다. 괜히 먹었다가 졸음 같은 정신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심혈관계 질환이 나타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