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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Dec 03. 2020

구세군 자선 냄비가 불편한 이유

기부를 하지 않는 나란 사람  

사진출처: 구세군 홈페이지


딸랑          딸랑          종소리가 들렸다. 연말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다.


퇴근길 종로3가역에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3호선 환승 구로 올라가니 빨간색 자선 냄비가 보였다. 같은 빨간색 패딩으로 깔맞춤을 한 여사님이 냄비 뒤에서 금색종을 흔들고 있었다. 여사님은 종소리의 여운이 지하철 역사 끝까지 미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쳤다.


그분이 종을 빨리 치든 천천히 치든 상관없이 나는 기부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마침 현금도 없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냄비 옆에 '노 캐시'라는 배너가 눈에 띄었다. 난생처음 보는 문구였다. 현찰을 안 받겠다는 건가. 궁금해서 다가가 읽어 보려 했다.


여사님이 내가 기부하려는 사람인 줄 오해할 수 있으니 너무 가까이 붙지는 않았다. 자세히 보니 돈이 없어도 기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 후불카드, 선불카드, 교통카드 등등 뭐든 다 된다고 한다. 냄비 뒤에 있는 여사님이 다가와 "현금이 없어도 마음만 있으면 기부할 수 있어요"라고 귀띔해 주는 듯했다.


그게 문제다. 나에게는 그 마음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기부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인정 많고 따스한 사람이란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유독 돈을 기부하는 데 인색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키지가 않는다. 누가 너는 왜 기부 안 하냐고 물어보면 그럼 너는 왜 하냐고 되물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맞는 거지 안 하는 게 맞는 거냐고 또 물어오면 네가 기부한 거 다 기관 운영비로 쓰인다고, 세상 물정을 좀 알라고 되받아쳤다. 그리고 진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내가 직접 후원할 거라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에게만큼은 내가 가장 어려운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30살 먹도록 취업하지 못한 나, 돈이 없어서 오백 원짜리 물 면도기를 한 달째 쓰고 있는 나, 월 24만 원 하는 고시원에서 새우잠을 자며 매일 같이 옆방의 욕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내가 가여웠다. 객관적으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분명히 있고 그들을 돕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내 감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어려운 시절은 영원하지 않았다. 취업에 성공하면서 고정 수입이 생겼다. 연차가 쌓이고 버는 돈이 늘어나는 동안 씀씀이도 커졌다. 면도기를 질레트 진동면도기로 바꾸고 월 32만 원의 8평 원룸으로 이사도 했다. 월급날이면 만원 이천 원짜리 로스까츠 세트를 고민 없이 사 먹었다. 88만 원 세대는 꿈도 못 꾼다는 결혼까지 했다. 나는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를 갖춘 것 같다.


그러나 내 마음은 제자리걸음이다. 어렵게 살았던 시절이 무의식 속에 뿌리 박혀서인지 기부하려는 생각을 자꾸만 억누른다. 상처 받은 마음에도 관성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기부할 기회는 많았다. 재작년에는 컴패션에 꾸준히 기부해 온 아내를 따라서 자선공연에 간 적이 있다. 샤크라 멤버였던 황보 씨가 춤을 추었고 가수 김범수 씨는 바빴는지 직접 오지는 못하고 영상을 통해 노래를 불렀다. 공연 말미에는 차인표 씨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후원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춤과 노래, 훌륭한 스피치까지 매우 설득력 있는 공연이었다.


주죄 측은 성명과 주소, 후원 액수를 적어내는 종이를 나눠졌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무언 가를 적는 듯 보였다. 이때도 나는 망을 보는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언제 포악한 짐승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지금도 비슷한 마음이다. 이런 내가 싫지만 이런 나를 무시할 수도 없다. 얼마나 많이 벌어야 나도 기부란 것을 해볼 수 있을까. 딸랑 딸랑 소리가 들려올 때 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내 마음이 기부를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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