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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가 Dec 24. 2020

자가격리 D+13. 마지막 날

자가격리는 '만으로' 14일간 하는 것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줄 알았건만 내일이 격리 해지라고 한다. 내일 오후 12시(정오)에 격리가 해제된다는 문자가 동생한테 날아들었다. 격리 해제 시 해야 할 일들도 적혀있었다. 쓰레기를 폐기물로 처리해서 버리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격리를 하고 있는 원룸은 동생들 집이다. 운이 좋게 긴 연휴에 맞춰 한국에 오게 되었고 동생들이 엄마가 계신 시골에 내려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 곳이 내 격리처가 되었다. 연휴가 끝나고 며칠 전에 올라온 동생은 친구네 집에서 지내고 있다. 작은 원룸이라 격리하기에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혼자 지내기에는 아주 좋았다. 가끔씩 시야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몽골 사람들이 막힌 것 없는 평원에서 살아서 그렇게 눈이 좋은 거라면, 이런 작은 원룸에서 갇혀만 있으면 멀리 있는 것을 볼 기회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창문을 열어도 옆 건물만 보이는 도시 생활이란. 


동생들은 내일 12시가 되면 바로 들어오겠단다. 한동안 밖에서 사느라 짐도 많고 집에 들러야 할 일도 있다면서. 나는 내일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애들 오기 전에 퍼즐도 마무리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청소도 한 번 해야지. 격리 끝이 다가올수록 더 바빠지는 것 같고 안 나가도 살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가는 것이 오히려 귀찮다는 생각이 들다니......


자가격리 2주간 혼자 생활한 것은 나에게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마음껏 게으르게 늘어져있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일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저것 챙겨서 택배로 보내준 친구들이나 먹고 싶다는 것을 문 앞에 놓고 가주는 동생이나 자기의 일인 듯 손꼽아 격리 해지를 기다려주는 친구들도. 얼른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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