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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가 Apr 11. 2020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자신 외에 너에게 상처 입힐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위험과 죽음을 무릎쓰고라도 운명을 접해보고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이가 프리모 레비였던가 아니면 역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온 빅터 프랭클이었던가 아니면 나였던가.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박식하게도 그리스어에서 따온 진기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각각,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립톤)' 그리고 '낯선 것(제논)', '움직임이 없는 것(아르곤)'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정말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그 가운데는 공기의 일 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이 존재하는 아리곤, 곧 '움직임이 없는 것'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양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유지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이산화탄소보다 스무 배 또는 서른 배나 많은 양이다." 신기하지 않니? 원소들이 제 처지에 만족하고 있다는 표현이라니.
나는 아르곤이 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럴 수 없었다. 하다못해 크립톤, 하다못해 제논, 하다못해 안정된 그 무엇이라도 되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 원소 군에의 입장을 제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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