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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장수 퐝케터 Mar 05. 2020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퇴사일기02 - 이토록 실감나는 죽음  

퇴사일기02 - 이토록 실감나는 죽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 정확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020년 2월 29일 00시,
하루의 끝과 하루의 시작이 맞닿는 시간에
소천하셨다.

다시는 돌아오시지 않으실 곳으로.

태어날때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그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할머니란 단어는 곧 유일무이하게 외할머니를 뜻했다.

1930년생이신 할머니는 올해로 91세를 맞이하셨었다.
4년간 요양원에 계셨고 사고나 큰 병 없이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호상이었다.

예상 된 이별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본격 퇴사모드에 돌입한 지 1주일 만에
재취업도 못한 백수 상태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원래 조모상은 사회적으로 잘 찾아뵙지는 않는다. 그래도 회사의 노예일 때는 긴밀한 협력 부서의
동료의 조모상은 팀을 대표해서 찾아가기도 했는데 백수가 되니 찾아올 손님이 없었다.

게다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국이라 올 수 있는 손님조차 찾아오기 힘들어진 모습을 보니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북에서 태어나시고 젊은 날을 보내시다가 6.25 때 연고 없는 인천에 정착하시고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인생의 3분의 2 가량을 과부로 보내신 할머니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근현대사의 증인이었다.

할머니의 음식은 그래서인지 전형적인 서울 경기 스타일의 음식이 아니라
개성 황해 지방 스타일이었다.
특히 만두와 수제비를 자주 해주시곤 했는데 이남지방의 것과는 달랐다.
동그란 꽃 같은 모양에 두 부 소를 많이 넣어 심심하면서도 담백한 게

전통주에 딱 잘 어울리는 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레시피를 물려받으셨지만 엄마의 취향에 맞게 레시피를 바꾸시기도 하였고,

손맛이 다르다 보니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 느낌과는 약간 달랐다.

다시는 이승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된 것이다.


할머니 사는 동안 고생 많으셨고 가신 곳에서는 편하게 지내시길 바라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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