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청춘의 분노의 노래, 노브레인 - 청년폭도맹진가

노브레인 - 청년폭도맹진가(2000)

by 술취한새우
청년폭도맹진가.jpg 너무도 구하고 싶지만 중고가 18만원을 호가하는 초희귀 음반이 되어버린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대한민국의 지난 70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격동의 70년이었다. 20세기 한국의 경제 성장은 '폭주'의 시대였다. 그러나 서구 국가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일군 경제 성장을 '빨리빨리'의 정신 하에 속도전을 치르던 동방의 작은 나라에게 주어진 폭주의 대가는 가혹했다.


외환위기 사태의 발생이 1997년이니 올해로부터 26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청년층은 20세기 말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에게 있어 그 시대가 자신의 시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물론 IMF 관리 체제 하에서의 5년은 절대적으로 긴 기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때 우리 사회를 할퀸 상흔에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이들까지도 쓰라림을 겪고 있기에, 20세기 말엽의 시대적 아픔은 2023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러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보았다. 예술의 꽃은 어둠의 시대에 피어난다고. 그 말을 보고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앨범, 노브레인의 〈청년폭도맹진가〉였다.


사실 펑크 록보다 '저항'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음악 장르가 있을까? 섹스 피스톨즈의 1970년대 영국, 블루 하츠의 1980년대 일본, 그리고 1990년대 후반 한국에까지, 펑크 록은 어둠의 시대의 동반자였다.


6년간에 걸친 제2차 세계 대전은 추축국의 패망으로 끝을 맺었다. 참혹했던 전쟁의 종식은 곧 찬란했던(물론 그들에게만 찬란했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시대의 종언이었다.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녔던 대영제국은 이제 다시 원래의 조그만 섬나라로 돌아갔다. 영국은 분명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결코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은 서서히, 눈에 보이지 않게 몰락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영국병'이라는 표현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그 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미지의 것이었다.


그렇게 병상에 누워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던 영국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섹스 피스톨즈였다. '나는 반(反)기독교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그들의 대표곡 'Anarchy in the UK'의 가사)라며 자신들을 소개하고, 영국의 국가와 동명의 곡 'God Save the Queen'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더러 파시스트라 칭하는 대범함을 선보인 이들은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또라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고 본다(그리고 이들은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그 '똘끼'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이 '또라이들'이 펑크 록이라는 음악 장르를 정립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1990년대의 지구 반대편, 홍대 입구의 작은 클럽 '드럭'에 섹스 피스톨즈의 '똘끼'를 충실히 물려받은 이들이 등장한다. '너희는 펑크가 아니'라는 평론가들의 잡설에 "그럼 씨발 우리는 조선펑크다!"라며 일갈한 이들이 우리가 흔히 아는 크라잉넛, 노브레인, 레이지본, 럭스 등의 조선펑크 1세대이다.


그 중에서도 노브레인의 1집 〈청년폭도맹진가〉는 훗날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26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년폭도맹진가〉를 들으면서는 평론가들의 평은 '잠시 집어치워 두도록 하자'.


〈청년폭도맹진가〉는 CD1 난투편과 CD2 청춘예찬편으로 나누어져 구성되어 있다. 난투편에서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는 저항 정신으로서의 펑크 록을 우리식으로 재해석한 '조선펑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청춘예찬편은 흥겨운 브라스 연주가 곁들여진, 왠지 모르게 익숙한 '뽕끼'를 떠올리게 하는 스카 펑크를 담아내고 있다.


70여 분의 조선펑크 향연의 포문을 여는 첫 곡, '날이 저문다'의 전주는 그 자체로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다. 차승우의 날선 기타, 울부짖는 이성우의 보컬, 이들의 음악이 서구의, 일본의 펑크 록보다 못한 게 무엇인가?


침몰한다 무너진다
하염없이 부서진다
부딪힌다 깨어진다
하염없이 부서진다


'날이 저문다'의 가사 일부다. 침몰하고, 무너지고, 부딪히고, 깨어지는, 마침내 '날이 저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나름의 해석이지만 나는 이 노래를 병든 사회, 병든 대한민국에 대한 작별의 노래쯤으로 받아들인다. 이 앨범의 전 곡을 작사·작곡한 차승우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뭐 어쨌든 음악은 내가 듣기 나름인 것 아니겠는가.


'날이 저문다'의 뒤를 잇는 곡은 다름아닌 '애국가'다. 우리가 아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그 노래 맞다. 가사도 멜로디도 우리가 아는 것 그대로이지만 왠지 딴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왜일까. 섹스 피스톨즈의 'God Save the Queen'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어서 나오는 곡은 앨범의 제목과 동명의 곡인 '청년폭도맹진가'이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Viva 대한민국'이지만, 이 앨범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려 한다면 대표곡으로 이 곡 '청년폭도맹진가'를 거침없이 꼽겠다. 그만큼 이 앨범의 정신을 한 곡 안에 농축하여 담아낸 엑기스 같은 존재다. 군가 풍의 곡에 맞춰 홍대 거리를 행진하는 뮤직비디오 또한 백미다.


뒤이어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시피 허황된 미디어를 비판하는 '티브이파티'와 빈곤, 풍요, 혼돈의 자식을 자처하는 '호로자식들' 등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십대정치'는 상당히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대놓고 저 늙고 추한 꼰대들을 죽이자는 이들의 패기는 쉰을 바라보는 그들에게는 이제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7분에 달하는 긴 곡이지만 대부분은 차승우의 현란한 기타 솔로로 가득차 있다. 그에게 있어펑크 록 밴드는 일종의 굴레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Viva 대한민국'은 반어법의 향연이다. 그렇게 지겹도록 듣고 자랐던 '반만년 역사', '한강의 기적' 따위의 미사여구에 '좆까라'며 일갈하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왠지 모르게 짜릿하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곡에서 수 차례 반복되는 '아 대한민국 아 나의 조국'이라는 가사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여운을 남겼다.


스스로를 '잡놈 패거리'라며 자조하면서도, 그렇기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적 표현의 '잡놈 패거리', 기득권을 부수자던 이들이 또다른 기득권이 된 현실에 대한 곡 '98년 서울', 자신들을 정열의 펑크 라이더이자 조선펑크로 정의하는 '정열의 펑크 라이더'를 끝으로 난투편은 끝을 맺는다.


CD2의 청춘예찬편 또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일관적이다. 그러나 CD2에서의 음악적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대번에 뽕짝을 연상시킬 브라스 연주와 좀 더 느긋해진 곡조는 다른 앨범을 재생시킨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지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모습에 아파하고, 청춘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청춘예찬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단연 '전자 펑크 리믹스 메들리'이다. 10분에 달하는 대곡이지만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시작부터 고속도로 휴게소에 방문한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이 곡은 노브레인이 본작 〈청년폭도맹진가〉에 앞서 발표한 EP 앨범 〈청춘구십팔〉의 수록곡들을 전자 음악으로 리믹스하여 메들리의 형식으로 부른 것이다. 나는 이 곡을 내 멋대로 '뽕짝 펑크'쯤으로 정의해본다.



당대의 조선펑크 1세대 밴드들 중에서도 노브레인의 음악이 유독 고평가를 받는 것은 그들의 음악이 '저항'이라는 본연의 정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깊이는 결코 얕지 않았다. 사회 비판에 대한 곡이랍시고 RATM의 'Killing In The Name'을 조잡하게 베낀 곡(H.O.T.의 '열맞춰'를 지칭함)을 내놓던 동 시대 주류 음악과는 분명히 달랐다.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만을 노래하던 음악 시장에서 민중가요만의 몫이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자연스럽게 대중음악 속에 녹여냈다.


사실 이 시기 노브레인이 이룬 음악적 성취는 못 해도 8할은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몫일 것이다. 본작 〈청년폭도맹진가〉 전 곡의 작사·작곡을 담당한 것 또한 그였기에, 이 앨범에서는 단순한 펑크 록뿐만이 아닌 그가 늘 동경했던 지미 헨드릭스 류의 5, 60년대 로큰롤 풍이 물씬 느껴지는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없는 노브레인이 완전히 다른 음악을 할 것이라는 것은 필연 예견된 일이었다.


차승우는 2집 〈Viva No Brain〉을 끝으로 노브레인을 탈퇴한다. 차승우가 없는 노브레인은 '넌 내게 반했어'라는 걸출한 히트곡을 배출하며 제 나름의 길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3집 이후의 노브레인 음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앞으로도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던 '잡놈 패거리'들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모두가 그렇게 말만 많았지
모두가 그렇게 사라져 갔지
(중략)
세상을 바꾼다고 떠들던 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중략)
너희들의 창백했던 고함 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들리지 않고


〈청년폭도맹진가〉에 수록된 '98년 서울'의 가사 중 일부다. 변해버린 이들을 비판하던 그들은 변해버렸다. 가사 속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꾼다고 떠들던 이'는 바로 그들이었다. 〈청춘구십팔〉의 수록곡 '아주 쾌활한'에서 '문민정부 좆까는 소리'를 외치며 청와대, 노동부, 안기부에 '씨발'을 날리던 그들은 자신들의 히트곡 '넌 내게 반했어'를 개사하여 '이번엔 이명박'을 외쳤다.


물론 록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사회를 향한 분노를 담은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임을 십분 이해한다. 그들이 상업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욕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나 홍대 입구의 지하 클럽 인디 밴드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혈기 넘치던 청춘의 그 뜨거운 정신을 갖다 버려서는 안 됐다. 음악적 성향을 바꿀 수는 있어도, 그 정신을 바꿔서는 안 됐다. 그것은 노브레인의 뜨거운 음악을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배신이다.


조선펑크의 짧았던 전성기는 몇 안 되는 음반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선펑크 1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있어도, 적어도 대중의 기억 속 조선펑크 2·3세대는 없다.


나는 그 때의 조선펑크가 서구의, 일본의 펑크에도 꿇리지 않는 음악적 가치를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 때가 좋았지'를 외치는 꼰대들 같을 수는 있겠지만, 그 때 그들의 음악은 좋았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변해버린 그들과 사라져버린 이들을 추억하며 지금은 40대 아저씨가 되었을 20년 전 청춘들의 음악을 하염없이 듣고 있을 뿐이다.



https://youtu.be/pI5Qyhkdjk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