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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Aug 27. 2021

내 인생의 노래

노래는 추억을 소환한다


노래를 듣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하나의 밴드나 가수, 하나의 앨범, 심지어 하나의 노래를 오랫동안 주야장천 듣는 스타일이다. 1년 동안, 출퇴근 시간에 오직 한 밴드의 음악만 들은 적도 있고, 일주일 동안 업무시간 내내 하나의 노래만 들은 적도 있다. 대학교 때, 친구 4명이서 검색 엔진을 개발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각자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사무실에 노래를 틀어놓고 일을 했다. 그런데, 내 차례에 하루 종일 nirvana의 'breed'만 반복 재생해서 친구들이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물론, 난 친구들의 괴로움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렇게 노래를 듣다 보니, 어떤 노래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어떤 시기가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각 시기에 배경음악들로 깔려있는 노래들을 한번 되새겨 볼까 한다. 


푸른 하늘 - 최초의 내돈내산


어렸을 때는 돈이 생기면 오락실에 가기 바빴기 때문에, 내 돈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돈으로  첫 책을 샀고, 중학교 1학년 때 내 돈으로 첫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그때의 나는 아직 노래를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을 사야 할지 몰랐다. 다만, 사춘기에 막 진입하고 있을 때였고, 왠지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노래는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우리 누나에게 물어보고 샀는데, 그때 누나에게 소개받은 밴드가 '푸른 하늘'이다.

당시에, 주류는 아니지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있었다. 푸른 하늘을 비롯해서, 마그마, 들국화 등이 있었던 것 같다. 각각의 밴드들이 모두 강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푸른 하늘은 그중에서도 무척 감성적인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그런 감성이 사춘기 중학생인 나에게도 잘 맞았는지, 고등학교 1학년 정도까지 푸른 하늘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공일오비 - 고등학교 시절의 BGM


공일오비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교실이 떠오른다.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고 있고, 스피커에서 공일오비의 '텅 빈 거리에서'가 흘러나오고 있는 광경이다. 그 광경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내가 공일오비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광경이기 때문인 것 같다.

방송반에 공일오비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반 친구들 중에 공일오비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공일오비에 물들었다. 공일오비의 노래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기존의 음악들과는 다소 낯선 느낌이 들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노래에서도 신선한 느낌이 많이 들었고, 객원 가수 체제라는 것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어쩌다 보니 63 빌딩에서 하는 공일오비의 첫 콘서트에도 가게 되었다. '텅 빈 거리에서'의 객원 보컬이었던 윤종신과 합동으로 하는 콘서트였는데, 공일오비의 첫 콘서트이면서, 내 생애 첫 콘서트이기도 했다.

이후 공일오비의 앨범들은 거의 발매하자마자 구입해서 들었다. 5집까지는 열심히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내 취향도 달라지고, 공일오비도 이전 같지 않아서, 6집부터는 들은 기억이 없다.


크랜베리스 - 달성할 수 없게 된 버킷리스트


지금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The Cranberries'다. 크랜베리스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일랜드의 록 밴드다. 특히, 강함과 부드러움을 다 가진 보컬 돌로레스의 목소리가 무척 인상적인 밴드다. 크랜베리스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자우림을 생각하면 된다.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크랜베리스의 돌로레스고, 실제로 비슷한 면이 많다.

대학교 1학년 때, 집으로 가는 길에 선배가 차를 태워준 적이 있었다. 그때, 선배가 노래를 하나 틀었는데, 바로 크랜베리스의 'Zombie'였다. 듣자마자 노래에 매료되었고, 나중에 Cranberries의 노래를 전부 찾아 듣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최애 밴드는 크랜베리스다. 몇 년 전에는 1년 내내 출퇴근 시간에 크랜베리스의 음악만 듣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해체했던 크랜베리스가 재결성했을 때는 너무 좋았다. 내한 공연을 오면 좋겠지만, 동아시아 근처만 와도 비행기 타고 가서 콘서트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 늘 첫 번째로 적는 항목이었다. 그런데, 아주 갑자기 보컬인 돌로레스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래서 이제는 녹음된 목소리로만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후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 수 있을 때 빨리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스터 빅 - 내 인생 최고의 콘서트


대학교 때였던 것 같다. 몇 학년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레코드점에 가서 무엇을 살까 고르고 있었다. 그때 주인아저씨가 찾는 게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특별히 찾는 것은 없고, 그냥 둘러보고 있다고 대답한 것 같다. 그러자 아저씨가 앨범 하나를 추천했고, 나는 별 저항 없이 아저씨가 추천한 앨범을 구매해 버렸다. 그것이 Mr.Big의 'Lean into it'이었다.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 이 글도 그냥 좋아하는 뮤지션을 적을 생각이었지만 적다 보니 전부 밴드뿐이다. 밴드뿐만 아니라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밴드 음악을 유독 좋아한다. 특히 록 밴드의 음악을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아했다. 친구들 중에는 메탈에 빠진 녀석들도 있었지만, 나는 메탈보다는 파워풀한 느낌의 록 음악을 좋아했고, 그런 내 취향에 미스터 빅의 음악은 너무도 잘 맞았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콘서트는 잘 가지 않았다. 록 밴드를 좋아하지만 음악적으로 취향이 맞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같이 록 밴드 콘서트를 보러 갈 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아내는 시끄러운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콘서트를 거의 가지 않았다가, 30대 후반부터 혼자서 몇 번 콘서트를 다녔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는 아내의 권유가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0대 후반쯤 되니 혼자 콘서트를 가는 게 그다지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래서, 드림시어터 공연도 가고, 에이브릴 라빈의 공연도 갔으며, 미스터 빅의 내한공연 소식이 있어 미스터 빅의 공연에도 갔다. 그것도 나와 밴드 사이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가장 앞에서 즐겼다. 그리고 그 공연은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들 중 하나가 되었다.


신 해철 - 음악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좋았던


신 해철의 음악을 물론 좋아한다. 무한궤도부터 좋아했고, 넥스트의 음악들에는 열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밴드와 달리 신 해철은 단지 음악만으로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신 해철이라는 사람 자체도 많이 좋아했다. 그래서 그가 없는 지금이 안타깝고, 여전히 가끔 그가 생각난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시기에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박 소현의 'FM데이트'와 신해철의 '음악도시'를 애청했다. 그때 신 해철이라는 사람을 처음 접하게 된 것 같다. 생각보다 박식해서 놀랐고, 대본을 팽개치고 진행하는 솜씨에 감탄했다.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어딘가에 얽매이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세월이 지나면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도 신 해철은 신 해철이었다. 생각이 자유로우면서도 질서 정연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삶을 자신의 말과 일치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내가 꿈꾸었던 삶을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대하는 시각과 행동을 보면 우리 세대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세대를 신 해철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재택근무 시기를 떠올리게 만들 노래들


1년 반 정도 재택근무를 했다. 중간에 회사에 나간 기간도 있지만, 대체로 재택근무 기반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백신이 보급되고, 다시 예전처럼 출퇴근이 일상인 날이 곧 올 것 같다. 그러면, 이 시간도 돌아보는 시간 목록에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노래를 들으면 지금 이 시간들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재택근무가 막 시작되었을 때 들었던 아이유나 악동뮤지션의 노래들일 수도 있고, 근래에 많이 듣는 퀸의 노래들일 수도 있겠다.

글을 좋아하고,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음악만큼 사람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특정 시기에 특정 뮤지션의 음악들에 몰입하는 것 같고, 그것이 나이테처럼 추억으로 겹겹이 쌓이는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 몇 명의 음악인과 몇 개의 노래들이 더 추억으로 쌓이게 될지 궁금하다. 음악이란 게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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