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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Mar 19. 2021

[Movie] 삶이 무엇이길래

@ 영화의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사는 게 뭐길래


1992년, 대한민국의 안방을 점령했던 드라마 중에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순재, 김혜자, 윤여정, 최민수, 하희라 등 쟁쟁한 출연자에 설정이나 대본도 좋아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통해 일약 국민 노래로 떠오른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김국환의 '타타타'였다. 가요톱텐에서 골든컵까지 탈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고, 무명에 가깝던 가수 김국환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가수로 만들었던 노래다.

타타타가 국민가요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드라마의 힘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타타타의 노랫말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킨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것 아닌가', '그래도 손해만 보는 장사는 아니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노랫말이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삶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는 철학자들에게만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특히, 삶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는 더 많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힐링'이다. 그리고 '힐링'이라는 키워드는 곧 '삶'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우리는 여전히 삶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 -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리틀 포레스트는 어찌 보면 참 심심한 영화다. 영화에 긴장감이 별로 없다.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영화 자체도, 긴장감으로 가득 찬 도시보다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시골과 닮은 면이 있다. 그래서, 감정이 잔잔하게 흐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잘 맞는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흥행이 잘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흥행이 잘 되는 영화는 싱거운 음식 같은 영화보다는 달고 맵고 짠 음식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수가 150만에 달한다. 150만이 흥행 대박을 말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잔잔한 영화를 150만 명이나 봤다는 것은 생각 이상이었다. 개봉 시기도 비수기로 꼽히는 시기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만큼 삶에 지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 것 같다.

주인공 혜원은 고향을 떠나 도시 생활을 했다. 도시 생활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잠깐 쉬러 고향을 찾는다. 그런데 잠깐 쉬러 온 곳에 자꾸 머물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바로 그곳이 혜원이 있어야 할 곳이었기 때문이다.

혜원의 도시 생활은 몇 장면만 보아도 쉽게 공감을 얻는다. 우리 자신이 도시 생활의 고단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도시와 대비되는 시골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단순히 배경으로서만이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시골과 잘 어우러진다. 이를 통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 혹시 이곳은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단순히 장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 혜원은 도시로부터 시골로 이동하면서, 동시에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삶,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삶으로부터, 자신이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삶으로 이동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꼭 시골에서의 삶만이 우리에게 어울리는 삶인 것은 아닐 것이다. 도시가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 도시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편안케 하는 환경이 있으며,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일 것이다. 영화는 그저, 우리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것이 행복한 삶의 한 가지 조건이 됨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 트리나 파울루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 떠오르는 영화였다.


어바웃 타임 - 시간은 마치 거울과도 같다.


거울을 보자. 거울 속에는 한 사람이 서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웃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내가 그를 향해 웃어주면 된다. 시간은 마치 이런 거울과 같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시간이 우리를 향해 웃어주길 바란다면, 우리가 우리 삶을 향해 먼저 웃어줄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다. 약간 특별한 것이 있다면 미래로는 갈 수 없고,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로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앞부분에는 이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로맨스 영화 같은 전개가 펼쳐진다. 소심해서 연애도 제대로 못하던 주인공 팀은 시간여행을 이용해 자신의 실수를 되돌리고, 잘못된 일을 바로 잡으면서 본인도 점차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감독은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생긴 후,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가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로 바뀌는 장치를 통해, 시간 여행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는 얘기를 한다. 현재의 나에게 아주 소중한 것들도 모두 내가 이미 살아온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과거를 바꾸지 말고 현재에서의 노력을 통해 바꾸어 갈 것을 권한다. 결국 팀은, 시간 여행에 의지하지 않고 여동생을 절망에서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후반부로 가면 감독은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풀어낸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팀의 아버지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담배를 피기 전으로 돌아가면 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식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인다. 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팀에게 한 가지 조언을 주는데, 그것은 매일을 두 번씩 살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팀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하루하루를 두 번씩 살아본다. 첫 번째 하루는 평소의 하루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바쁜 일과 때문에 정신없이 보내는 하루였다. 하지만,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두 번째 하루는 달랐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팀에게 첫 번째 하루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첫 번째 하루에서 자신을 짜증 나게 했던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성실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니 같은 하루인데도 행복감이 더 넘쳐흘렀다.

영화 말미에 팀은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기로 한다. 하루하루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 만으로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삶을 구성하는 시간 속에 무엇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노킹  헤븐스 도어 -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천국에는 주제가 하나야.'

영화 속 두 청년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알 수 없었지만,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두 청년은 바다를 보러 간다. 하고많은 것 중에 바다를 보러 가기로 결정한 것은, 그저 바다가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같은 건 없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사는 시간의 양은 다르지만, 제한된 시간을 산다는 것은 동일하다. 그 제한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 것일까?

주인공 마틴과 루디는 말하고 있다. 삶에는 거창한 이유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단지 바다를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의 이유가 된다고. 그러니 살아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쫓아가 보라고.

바다를 보러 가는 과정에서 두 청년은 운이 좋게도 마피아의 돈 가방을 얻게 된다. 그 돈으로 역시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한다. 그러다 마피아 두목에게 잡히기도 하지만, 마피아 두목은 천국에서 얘기할 것은 바다밖에 없다며 두 청년을 보내준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두 청년의 바다를 향한 여정에 축복을 내려주고 있다. 

그렇게 마음껏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며 두 청년은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다를 보면서 담담하게 삶을 마감한다. 한때, 영화에 나오는 해변이 어딘지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한번 그 해변을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 가보지는 못 했다.

어쩌면 우리는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지는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 혹은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삶은 그저 살아가는 시간인 것이고,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천국에 가서 얘기할 것들은 결국 그런 것들이니 말이다.
 

답은 내 안에 있다.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추천되고 있는 고전 명작 '데미안'에서, 헤르만 헤세는 모든 문제의 해답을 자신 속에서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자신은 이미 알고 있으니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현재가 과거로부터 이어지듯이, 미래는 현재로부터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무수한 오늘들로 가득 채워진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오늘 하루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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