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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Mar 14. 2022

게임 기획자가 학습하면 좋은 8가지

기획자의 성장 코스


게임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프로그래머였다.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는 정해진 코스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코스를 충실히 따라가면 한 명의 온전한 프로그래머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8년 정도 프로그래머 생활을 하다가 게임 분석을 하고,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한 후에 프로듀서가 되었다.

PD가 되어 프로젝트 리더 역할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획자들과 밀착되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기획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했다. 그런데 막상 기획을 공부하려고 하니, 프로그래밍처럼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찾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같이 일했던 기획자들도 대체로 현장 경험과 선배의 노하우를 통해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기획에도 학습의 단계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커리큘럼을 구성해 봤다.

다음에 나오는 8가지는 내가 나름대로 순서를 정해 본 것이다. skill부터 economy까지 차례로 학습해 나가면 게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Skill


뮤지션이 되려면 악기를 연주해야 하고, 축구 선수가 되려면 공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획자도 기획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가장 바탕이 되는 영역이다. 사실, '기술'이라는 말보다는 '지식'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skill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잘하는 것보다는 잘 아는 것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게임 기획에는 어떤 분야가 있는지, 하나의 게임을 기획하기 위해서 어떤 순서로 작업해 나가는지 등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게임을 보는 눈이 생기고, 게임 기획에 대한 생각의 프레임이 잡힌다. 철학도 중요하고, 본질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지식이 없으면 철학도 깊은 사유도 모두 허공을 맴돌기 마련이다.

이 단계의 학습을 위해서는 시중에 나와있는 게임 기획에 대한 책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제시 셸의 'Art of Game Design' 같은 책을 좋게 보는 편이다.


Creativity


일단 기획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이제는 그 위에 창의성을 입혀야 한다. 성공한 게임이 하나 나오면 그것을 모방한 게임이 우후죽순처럼 발매되는데, 그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반면, 모방에서 시작했어도 자신만의 창의적 요소를 같이 가지고 있는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성공의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게임들은 익숙함과 참신함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사고가 훈련을 통해 향상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사고를 돕는 기법들은 분명 도움이 된다. 여러 가지 연상법 같은 것이 그런 것인데, 마이클 미칼코의 책중에 그런 기법들을 소개하는 책이 있으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기법들을 사용해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훈련을 직접 해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잘 맞는 기법을 발견하게 되고, 실제 업무에서 필요할 때마다 그런 기법을 사용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Cooperation


기획자는 좋은 기획을 만들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게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개발자, 아티스트, 마케터, 운영자, 테스터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기획자다. 따라서, 좋은 협업 스킬도 기획자에게 필요한 요소다.

협업의 핵심은 역시 커뮤니케이션이다. 단순히 도구를 잘 쓴다거나, 일정을 잘 지킨다거나, 정보 전달을 잘한다고 해서 협업을 잘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좋은 협업자라고 말할 수 있다. 협업을 하는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사람'과 협업하려면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시중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역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계속 잘 팔리고 있는 책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 더 추천하자면, '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을 들 수 있다. 원저는 'Getting to Yes'라는 책인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원하는 것을 달성하고자 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다.


Neighbor


협업하는 대상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게 되었다면, 그다음에는 아예 그 영역들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쌓는 것이 좋다. 기술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기술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된다.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와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아트, 사업, 마케팅, 운영, 테스트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금의 지식만 있어도 파트너들을 이해하기가 더 수월해지고, 파트너들이 기획자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기획자가 내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획자와 그렇지 않은 기획자를 보는 시선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인접 영역에 대한 지식은 바로 책을 찾아보기보다는, 협업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여 조금씩 배워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 태도 자체가 파트너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는 대상과는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쉬워진다. 책을 보더라도, 파트너들에게 추천받아 보면 적당한 책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관계에 대한 얘기를 주로 썼지만, 인접 영역에 대한 지식은 기획 자체에도 도움이 된다. '인접 영역'이라는 것이, 결국은 일과 일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Contents


게임을 잘 기획하고 협업도 잘하게 되었다면, 이제 게임 바깥의 세상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게임은 여러 콘텐츠 중 하나다. 콘텐츠에는 영화, 방송, 만화, 소설, 유행어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각각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되는 부분도 많다. 특히, 플레이어에게 '재미'를 주어야 하고, 비슷한 여러 제품 중 우리 제품을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을 생각해 보면, 비슷한 입장에 있는 다른 콘텐츠로부터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콘텐츠를 이해하려면 일단 해당 콘텐츠를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콘텐츠를 직접 소비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다음에는 평론이나 고객 리뷰 같은 것들을 많이 찾아봐야 한다. 내가 소비한 콘텐츠가 전문가와 일반 사용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기획자가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Evaluation


콘텐츠에서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 콘텐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콘텐츠를 평가해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콘텐츠를 평가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게임 기획에 도움이 되는 통찰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학습한 콘텐츠들에 대해 평가를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고객들의 반응도 이미 알고, 전문가의 평도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작성해 보는 것이다. 그 내용이 거의 모방에 불과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처음에는 좋은 평론을 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각 콘텐츠를 평가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지망생들이 이미 나와있는 소설을 그대로 필사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다음에는 새로 나온 콘텐츠에 대해 자기 나름의 평가를 진행해 보자. 그리고, 그 콘텐츠가 어느 정도 흥행을 거둘지 예상해 보자. 그런 다음, 전문가의 평론과 비교해보고 실제 흥행 결과와도 비교해보면서 내 평가 역량을 확인하고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Management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섭렵했다면, 이제 프로젝트 관리 영역으로 통찰을 확장할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커리어에 따라 프로젝트 관리 역량이 필수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젝트 관리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면, 시니어 기획자로서 프로젝트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프로젝트 리더와 같은 수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이해는 곧 '프로젝트'라는 것이 가진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기획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기획자라고 해도, 시니어쯤 되었으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이 '시니어'와 '미들'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도 생각한다.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는 역시 시중에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있는 것 같다. 다만, 내가 본 책들은 주로 개발자 관점에서 작성된 책이기 때문에 여기서 추천하기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꼭 책을 하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프로젝트 관리의 영역은 체계가 잘 잡혀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체계가 잘 잡혀있는 영역일수록, 책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다음에 실무를 통해 자신의 상황에 맞게 가다듬어 가는 것이 좋다.


Economy


마지막으로 전체 산업에 대해 이해하면 좋다. 게임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 산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면, 기획 파트의 리더를 넘어 상위 리더의 역할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게임 산업을 이해한다는 것을 게임 회사들을 잘 알고 있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산업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산업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들도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게임 산업만이 가진 특징들도 이해해야 하며, 게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문화적 트렌드에도 밝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게임회사들을 보면, 제품 기획자보다 사업 기획자가 상위 리더의 포지션을 차지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산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제품 기획자가 많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업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에는, 시장을 이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 동시에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을지 이해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임 기획자뿐만 아니라


게임 기획자의 성장 코스를 생각해 본 것이지만, 사실 다른 직업들에서도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는 한 곳만 깊게 파는 전문성이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넓고 깊게 파야 더 깊게 팔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의 인접 영역까지 이해하고, 내가 주로 활용하지 않는 역량도 같이 성장시켜야, 내 전문성과 주요 역량이 더 깊어지고 강해지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내가 활용하는 지식의 단계보다 더 상위 단계의 지식까지 알고 있어야 시야도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걸 꼭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다 알지 않아도 좋은 기획자가 될 수 있고, 돈도 잘 벌 수 있다. 다만, 계속 성장하고 싶고, 무엇을 익혀야 할지 모르겠는 기획자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었으면 한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때가 가장 막막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좋은 기획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대한민국 게임업계가 좋은 기획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기원한다.


skill

게임 기획에 대한 기본적 지식과 생각의 프레임 갖추기

creativity

창의성을 자극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기법 습득

cooperation

협업을 진행하는 기술

neighbor

기술, 아트, 사업, 마케팅, 운영 등 인접 영역으로 지식 확장

contents

게임에 국한하지 말고, 영화, 방송, 만화, 소설, 유행어 등 여러 가지 콘텐츠에 대해 이해

evaluation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평가를 진행하고, 새로 나온 콘텐츠에 대해 미래를 예측해 봄

management

프로젝트 관리 영역으로 통찰을 확장

economy

게임 산업에 대한 포괄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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