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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May 20. 2022

골목길을 추억하며

어린 시절에 우리의 놀이터는 대체로 골목길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 단지도 거의 없었고, 당연히 지금 '놀이터'라고 불리는 정도의 공간은 학교 안에만 있었다. 그런데 학교는 집에서 거리도 있었고, 일과 시간이 아닐 때에는 문을 잠가 놓으니, 방과 후 잠깐을 제외하고는 놀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꽤나 많이 놀았다.


골목도 다 똑같은 골목은 아니어서 좁은 골목도 있고, 넓은 골목도 있었다. 대체로 넓은 골목에서 많이 놀았지만,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놀 때에는 거미줄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생각해보니 동네에 골목이 정말 많았는데, 그 많은 골목을 다 꿰고 있었으니, 그만큼 골목에서 많이 놀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골목에서 했던 놀이들에는 구슬치기, 딱지치기 같은 것부터 축구나 야구를 흉내 낸 놀이도 있었고, 얼음 땡, 담방구처럼 넓게 활동하는 놀이들도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오징어 게임도 많이 했지만, 그것은 조금 넓은 공터가 필요했기 때문에 골목에서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딱지는 네모난 딱지보다 동그란 딱지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손으로 쳐서 넘기는 방식도 있었고, 입으로 불어서 넘기는 방식도 있었다. 딱지에 있는 별의 개수나 숫자 같은 것으로 비교해서 승자를 가리는 것도 있었는데,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그림으로 비교하는 것이었다. 사람보다 로봇이 이기고, 불보다 물이 이기고, 빛이 있으면 가장 세고, 뭐 그런 식이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 어떤 기준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간혹 판정이 애매한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목소리가 크거나, 말발이 좋은 아이가 유리했다.


아이들 중에는, 골목대장까지는 아니지만 놀이를 주도하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어떤 놀이를 할지 결정할 때도 그 아이들의 의견이 중요했고, 위에 얘기한 것처럼 판정이 애매할 때는 그 아이들이 판정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말로 하면 핵인싸가 바로 그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골목길 양 옆으로는 집들이 있고, 그 집의 대문들이 있었다. 담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었고, 문이 열려있는 집들도 있었다. 지금의 아파트는 외부 공간과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 있는데, 당시 동네에 있던 집들은 모두 길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길과 집이 모여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좀 더 큰길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결국에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골목길에는 어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차도 없었다. 온전히 아이들만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가끔 지나가는 어른이 있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 신경 쓰는 어른은 없었다. 동시에, 그 길은 어른들과 차들이 가득한 공간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결국, 사방이 뚫려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는, 막는 사람도 없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는, 닫혀있으면서 열려있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아이들 스스로 공간을 정의하고, 아이들 스스로 질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점이, 어른들이 지켜볼 수 있는 정해진 공간에서 놀아야 하는 지금의 놀이터와는 가장 다른 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그 시절의 아이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골목길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사는 곳 주변에도 골목길이라고 떠올릴만한 공간이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를 돌아다닐 때 골목길을 더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외국의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골목길 같은 공간을 만나면 정겨운 느낌이 들어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수로의 도시라 불리는 베네치아에서도 골목길에 더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지나고, 도시가 현대화되면 골목길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의 도시들에 여전히 골목길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내 주변에서 골목길이 없어지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어쩌면 골목길의 상실은 단순한 공간의 상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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