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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Nov 25. 2022

어린 시절이 행복한 이유

'행복'은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단어다. 돈을 버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가족을 형성하는 것도, 모두 행복을 위해서다. '욜로'나 '워라밸' 같은 개념도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으며, 음식, 여행, 노래, 가족이 방송의 주된 소재가 되는 것도, 그것이 행복의 주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행복을 획득한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럴 때, 우리가 대체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그 시절이 행복했던 이유를 알면, 현재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순간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미래를 상상하기는 했어도 미래 때문에 현재를 희생시키지는 않았다. 오늘 친구와 어떻게 놀면 재밌을지를 고민했지, 내년에, 5년 후에 재밌게 놀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동시에, 과거에 얽매여 있는 일도 없었다. 내가 했던 결정에 얽매여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현재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완벽한 환경을 원하지도 않았고, 완벽한 도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되었고, 어디든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울리는 우리들도 완벽할 필요가 없었다. 어설퍼도, 모자라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완벽은커녕, 우리의 놀이와 삶을 평가한 적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재밌으면 됐고, 언제든지 재밌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때의 우리는 계산하지 않았다. 누구와 놀아야 할지, 얼마만큼 놀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길지 가리지 않았고, 친구가 하는 말에 어떤 다른 뜻이 숨어있는지 살피지도 않았다. 서로의 감정을 배려하는 일은 있어도, 이익을 따지는 일은 없었고, 함께 하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누구든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투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런 다툼조차도 솔직한 감정의 충돌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도 충분했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어느 순간부터 성공과 행복을 혼동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기억의 언저리로 밀려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성공과 행복을 동일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아이들은 과연 현재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부족함을 포용하는 삶을 살고 있을지, 솔직한 감정만으로 친구를 대하고 있을지, 혹시 어른들이 그런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성공을 이루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니 도통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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