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한하늘 Apr 28. 2023

그때 그 시절 - 영화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하나 있었다. '현대극장'이라는 이름의 극장이었는데, 극장 앞에 있는 시장의 정식 명칭이 '동부시장'이었음에도 다들 '현대시장'이라고 부른 것으로 봐서, 그 시절에는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도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현대극장 외에는 '현대'를 정식명칭으로 쓰던 장소가 하나도 없었다.


현대극장은 소위 '삼류극장'에 속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 극장이 제일 좋은 극장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더 좋은 극장이 많았다. 그 당시 삼류극장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동시상영'이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가 일반적이어서 하나의 극장에 여러 개의 상영관이 있지만, 당시에는 하나의 상영관만 있는 극장이 많았다. 그 하나의 상영관에서 두 개의 영화를 번갈아 상영하는 것이다. 입장권은 영화 한 편의 돈을 받으면서 말이다.


당시에는 '애마부인'같은 야한 영화도 극장에서 꽤 많이 상영되었다. 그런데, 동시상영을 하는 극장에서는 이런 성인용 영화와 '우뢰매' 같은 전 연령용 영화를 동시상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정석 제도도 아니고, 한번 극장에 들어가면 계속 영화를 봐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동시 상영을 하면 성인이 아닌 사람도 성인용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아마 그걸 노린 편법 운영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번은 어린이용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는데, 그날도 성인영화와 동시상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입장한 시간에는 성인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나로서는 재미도 없는 성인영화를 먼저 봐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본 영화가 '황진이'였던 것 같은데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매번 동시상영을 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단독으로 상영할 때, 극장에서 6번 정도를 계속 봤던 기억도 있다. 나중에는 장면장면을 다 기억할 정도가 되었는데, 그렇게 보면서도 매번 재밌었나 보다.


당시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가격은 6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짜장면 곱빼기 한 그릇 정도의 가격이니까 지금 물가와 비교해 보면 비싼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락실에서 50원으로 오락 한 판 하던 나에게는 무려 오락 12판에 달하는 커다란 금액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극장 주변 음식점들에 배포되는 할인권이 있었다. 할인권이 있으면 반값 정도로 영화를 볼 수 있었고, 음식점 중에는 친구네 집도 있었기 때문에, 간혹 할인권을 얻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종종 단체 관람을 가는 경우가 있었다. 국민학교 때는 대부분 '반공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이에게 보여주기에는 다소 잔인한 장면도 있었던 것 같지만, 어차피 영화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수업을 하지 않고 극장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 중 하나가 극장 앞에 줄이 형성되어 있는 풍경이다. 집에서 영화표를 예매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서 표를 사야 했고, 그래서 인기 있는 영화를 상영할 때는 극장 앞에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스개 소리 중에 지나가는 버스에서 누군가 창문을 열고 '범인은 OO다'라고 스포일러를 했다는 소리가 있는데, 극장 앞에 영화를 보려는 대기줄이 형성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온라인'의 개념이 없으니, 영화 홍보는 주로 게시판과 신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신문 아래쪽에는 각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의 광고가 나열되어 있었다. 또, 동네 여기저기에 영화를 광고하는 게시판이 있었다. 게시판에는 각 극장마다 포스터를 게시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 있고, 거기에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영화 포스터는 지금의 예고편만큼이나 무척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극장의 이름들이 지금도 몇 개 생각난다. 현대극장, 오성극장, 미림극장, 문화극장, 애관극장 등이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는 극장이 없지만, 현대극장의 경우 아직도 그 건물이 남아있어 정겨운 추억을 소환할 수 있게 해 준다. 혹시 소도시에 가면 예전 방식으로 운영하는 극장이 아직 있을까 싶다. 있다면 한 번쯤, 예전 방식으로 영화를 즐기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 시절이 행복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