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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un 02. 2023

오락실, 나의 '시네마 파라디소'

내 어린 시절, 무엇보다 자주 방문했던 가게는 바로 '오락실'이었다. 그때 오락 한 판을 하려면 50원이 필요했는데, 용돈을 받거나 심부름값을 받으면 모두 오락실에 썼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참아가면서, 한 판이라도 더 하려고 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오락에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50원짜리 동전 하나로 꽤 오래 게임을 즐겼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 했던 것이 4시간 정도였다. 결국 게임이 끝나지 않아(엔딩 없이 반복되는 게임이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에게 넘겨주고 오락실을 나왔다.


하루도 오락실을 가지 않은 날이 없어서 오락실에서는 유명 인사였고, 내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주변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런 기분 때문에 오락실을 계속 방문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돈이 없을 때도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게임은 어떻게 해야 좋은지 다 외우고 있었다. 심지어 비행기가 나오는 슈팅 게임은 적기가 등장하는 위치에 먼저 사격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자주 가는 오락실이 있기는 했지만, 가끔씩 다른 오락실에 가기도 했다. 집에서 도보로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오락실의 위치는 다 꿰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번화가가 아니다 보니 최신 오락의 보급이 늦었다. 따라서, 다른 동네의 오락실을 가면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보급이 늦기는 해도 가끔씩 새 게임이 동네 오락실에 등장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새 게임은 어지간하면 인기가 있었다. 그렇게 새 게임이 등장하면 마지막 엔딩을 보는 것이 큰 목적이 되었고, 먼저 엔딩을 확인한 아이가 명예를 얻었다.


오락실에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씩 어른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돈이 많아서 동전을 쌓아놓고 게임을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게임을 잘 못했지만, 돈의 힘으로 '이어하기'를 이용하여 게임의 엔딩까지 도달하고는 했다. 그러면 나는 옆에 앉아 그것을  전부 구경했다. 돈을 쓰지 않고도 게임의 전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귀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보를 얻고 나면, 50원으로 게임을 더 많이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학생들이 오락실에 출입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렇다고 징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락실을 불량 학생들이 출입하는 곳으로 가르쳤다. 그래서, 3학년 때는 불량 학생으로 찍히기도 했다. 당시, 가지 말라고 해도 자꾸 오락실에 출입하는 나를 담임 선생님이 무척 싫어했는데, 심지어 수업도 잘 듣고 시험도 무척 잘 봤는데도 불구하고 내 성적을 '미'(c)와 '양'(d)으로 도배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당한 처사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성적에 큰 관심도 없었고, 오락실만 다닐 수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오락실을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덜 가게 되었다. 공부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과 음악이라는 다른 취미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형이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에 컴퓨터가 생긴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그래도 20대 시절까지는 가끔씩 오락실을 찾았는데, 오락실에 가면 천 원으로 1~2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락실에 거의 가지 않는다. 사실 지금도 가끔 오락실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주변에 오락실이 없다. 그리고, 어쩌다 발견하는 오락실도 예전의 오락실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락실에 가도 재미있게 놀기가 어려워졌다.


오락실은 가지 않지만,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고 매일 게임을 한다. 심지어 대학 동기들이 전자 계통의 대기업에 취직할 때, 나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게임 회사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게임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로 시작했다가 중간에는 영화감독에 해당하는 게임 프로듀서가 되어 게임 몇 개의 제작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그 오락실이, 나에게는 '시네마 파라디소'와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된다.




@ 내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오락실이 얼마 전 40년 만에 폐업을 했다. 그 시절 내가 다녔던 오락실 중에서는 마지막 오락실이었다. 내 어린 시절에 즐거움을 채워주었던 오락실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덕분에 행복했다.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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