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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un 09. 2023

그때 그 시절 - 만남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주말, 그 친구와 전철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전철역 앞에 나갔지만 그 친구는 없었다. '조금 늦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친구를 기다렸다. 10분, 20분이 지나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기다리는 것을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계속 기다렸고, 결국 약속 시간으로부터 1시간이 지난 후에 친구가 왔다. 친구 말로는 약속을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약속이 생각났다고 했다.


지금이라면 5분만 늦어도 바로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휴대폰이라는 것이 없었다. 연락을 하려면 공중전화로 친구네 집에 전화를 걸어봐야 하는데, 중학교 때는 친구 집 전화번호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으면 하염없이 기다리고는 했다.


동인천에는 큰 서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서점 앞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이른바 '만남의 장소'라는 것인데, 이런 장소가 어지간한 번화가마다 하나씩 있었다. 모두가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잡다 보니,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만남을 갖는 장소가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모습 하고는 조금 달라 보인다. 아무래도 서로의 위치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보니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경우도 줄어든 것 같고, 약속 장소도 예전보다 다양해진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휴대폰만 없는 게 아니라 시계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디서 몇 시까지 만나자는 약속을 거의 안 했던 것 같다. 그보다는 친구네 집에 가서 불러내거나, 아이들이 늘 모이는 곳에 나와있는 애들끼리 적당히 놀았던 것 같다. 연락을 해서 놀 사람을 모으기보다 놀려고 모여있는 애들끼리 놀이를 했던 시절이다. 그러다 보니, 평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아이들끼리도 놀이터에서는 곧잘 어울렸던 것 같다.


내가 손목시계를 처음 가진 것이 몇 살 때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휴대폰을 갖기 전에는 손목시계가 필수 휴대용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시계는 왼쪽에 차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나는 괜히 똑같은 게 싫다고 시계를 오른 손목에 차고 다녔다. 선물로도 시계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시계를 좋아해서 고장이 난 이후로도 오랫동안 차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몇 개월 만에 갑자기 시곗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글을 쓰면서,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 약속을 잡고 만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얼굴은 모르지만 연락처를 알기 때문에, 약속 장소에 가서 전화를 걸면 내가 만나기로 한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방식으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옷을 입고 있겠다던가, 어떤 물건을 들고 있겠다던가 하는 얘기를 사전에 나누었다. 예를 들면, Nirvana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겠다는 식이다. 간혹 만남의 광장에서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신과 만나기로 한 사람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식별 약속을 미처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상대방에게 바람을 맞은 경우였던 것 같다.


26살 때인가, '아이러브스쿨'이 유행일 때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기억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전부 초등학생 때의 얼굴이라서, 친구를 알아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십 수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 얼굴을 전부 알아볼 수 있었다. 40대 후반이 된 지금은 십 수년이 그렇게 긴 세월이 아니지만, 20대였던 당시에는 까마득히 긴 시간이었다. 그런 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때 맥도널드 앞에서 한 번에 알아봤던 한 친구와 친구로 1년, 연인으로 3년, 부부로 19년을 지내고 있다.


만남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면 만남의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과는 달랐던 예전의 만남에서 낭만을 느끼기도 하지만, 온라인을 통해 생면부지의 사람과 교류하는 요즘의 만남에서도 상당한 재미를 느낀다. 앞으로 남은 생애에 또 어떤 만남이 있을지,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만남을 경험할지, 무척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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