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은 그래도 내일의 문제, 미래의 문제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일이 이제 오늘이 되어 있다. 환경 문제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눈앞에 펼쳐진 문제가 되었다.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ESG의 세 가지 요소에도 환경이 포함되어 있고, 실제로 많은 고객들이 친환경적인 기업과 그 반대의 기업을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가급적 환경에 친화적인 제품과 브랜드를 소비하려고 하고 있다.
이쯤 되니 최근 역시 핫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쪽에서도 환경과 관련한 이슈들이 떠올랐다. 인공지능 같은 소프트웨어가 환경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인공지능이 소비하는 에너지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그만큼의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공지능도 환경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GPT-3을 살펴보자. GPT-3는 한 마디로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GPT-3을 한 번 학습시킬 때 소비되는 에너지양이, 덴마크의 126 세대에서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양과 동일하다고 한다. 이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자동차가 70만 km를 달렸을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과 같다. 이 GPT-3가 한 번만 학습할 리도 당연히 없거니와, 세계적으로 점점 더 거대한 AI를 만들고자 하는 경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 소모에 있어 또 하나 언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 역시 채굴에 많은 연산이 필요하고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과거의 한 연구 자료에서는 전 세계에서 암호화폐 채굴에 사용되는 PC를 5억대로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 5억대의 PC가 1년간 소모하는 에너지로 인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자동차 1.6억대~6.7억대가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에 맞먹는다고 한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같은 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규모 언어 모델이나 암호화폐가 환경 문제 해결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잘 생각되지 않는다. 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당장 환경을 악화시키는 응용 분야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민이 필요하다. 병이 깊으면 일단 병이 악화되는 것을 먼저 막아야 하는 것이고, 환경 문제는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르러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연구 영역에서도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고, 더 적은 에너지 사용으로 비슷한 성과를 내려고 하는 연구들도 있다. 기술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친환경적으로 공급하려는 시도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늘 이익이 우선시 되어 왔고, 여전히 환경보다는 비즈니스적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기술이 환경을 악화시키는 시기가 더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무기로부터 인류를 지키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바로 사람의 의지다. 핵무기의 사용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실천이 수십 년 동안 인류를 핵무기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알게 모르게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또 다른 기술에 대해서도, 올바른 문제의식과 실천을 통해 좋은 방식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AI타임스, 'GPT-3 1회 훈련 시 70만 km 차량 주행과 맞먹는 이산화탄소 발생... 코펜하겐대에서 SW 개발'
오피니언 뉴스, 'AI가 기후변화 악화 주범?... 딥러닝 한 번에 탄소 배출량 '어마어마''
전정훈, '암호화폐 채굴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