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예로 자주 등장하는 게 있다. 바로 '컨테이너'다. 컨테이너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배가 항구에 들어오면 수십 명의 인력이 배에 짐을 싣기도 하고, 배에서 짐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짐을 싣고 내리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많은 배들이 항구 밖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컨테이너가 발명된 이후에, 짐을 싣고 내리는 시간은 극적으로 짧아졌고, 배들은 항구 밖에서 오랜 시간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이 과정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시간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짐을 싣고 내리는 데 필요한 인력도 극적으로 감소했다. 수십 명이 동원되어야 했던 일이 몇 명만 있으면 되는 일로 바뀐 것이다.
알파고를 이용한 구글의 연출은 무척 성공적이었다. AI가 사람을 따라잡으려면 수십 년은 더 걸릴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이미 상당히 인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심지어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에서 보았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디스토피아까지는 좀 과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는 비교적 현실적인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나 도구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역사가 이미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AI가 노동을 대신하는 사회에 결국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과연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인공지능은 사물을 구별할 줄 안다. 사람의 얼굴도 구별한다. 심지어 사람보다 더 잘 구별한다. 그리고 말도 잘한다. 과거의 데이터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고, 일관성 있는 판단력도 잘 유지한다. 24시간 일을 해도 지치는 법이 없으며, 하나의 똑똑한 AI가 만들어지면, 순식간에 수십 만개의 똑똑한 AI로 복제도 가능하다. 당연히 불평을 하는 법도 없고, 임금 협상이나 파업 같은 것은 아예 모른다. 많은 기업들이 인공지능 활용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효용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도구들이 사람의 육체를 대신했다면, AI는 인간의 두뇌를 대신할 수 있다.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병을 진단해 낼 수도 있고, 판사보다 더 공정하게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운전기사보다 더 안전하게 차량을 운행할 수 있고, 텔레마케터보다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할 수도 있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으로 성직자가 꼽혔던데, 어쩌면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계가 사람의 육체를 대신했을 때는 두뇌 노동으로 도피하면 되었는데, 이제 인공지능이 사람의 두뇌를 대신하게 되면, 사람은 어디서 일을 찾아야 할까?
없어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자리가 생길지는 얘기하지 못한다. 그저, 기계가 물리적 노동을 대신할 때도 잘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잘 살아남을 것이라는 정도의 얘기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여 낙관적인 전망이 얘기하는 것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양이 없어지는 일자리의 양만큼 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뺏긴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급여 수준이 충분할 지도 알 수 없다.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 한다. 인공지능은 많은 부문에서 생산성을 늘려준다. 이런 사실들이 결합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필연적인 방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은 구하지 못해 안달인 인공지능 개발자들조차 어느 순간부터는 일자리가 없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인공지능과 일자리에 대한 백서를 출간한 적이 있다. 내용은 생각보다 별 다른 것이 없었지만,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이 있었다. 한국이 인공지능의 적용은 빠른 데 비해, 인공지능과 일자리에 대한 논의는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자리에 대한 걱정이 기우일 수도 있다. 인구가 줄어들 예정이니 오히려 줄어드는 생산성을 보조하는 좋은 도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낙관적인 기대만 갖고 미래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사회 문제에 선제적으로 논의를 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충격이 적고,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준비가 우리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