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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시집 만들어 주기

by 취한하늘

큰 아이가 한동안 시를 많이 썼던 적이 있다. 그래서, 작년에 큰 아이가 쓴 시 50편을 모아 시집을 만들어 줬다. 그 일이 생각나 시집 만들었던 과정을 간단히 남겨 본다.


일단, 아이가 종이에 적어 둔 시를 워드로 옮겼다. 그러고 나서 오탈자를 수정했다. 내가 옮기다가 오타가 난 것도 있지만, 원문에 오타가 있는 것도 있었다. 아무래도 '시'이기 때문에, 문맥을 살펴 고칠 것과 놔둘 것을 가렸다. 아이의 의도가 섞인 것이 있을 수도 있어, 오탈자를 전부 수정한 후 아이에게 검토를 맡겼다. 하지만, 귀찮아서 제대로 본 것 같지 않았다.


다음으로, 제목과 본문의 글자 크기를 결정했다. 이때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서정윤 시인의 시집을 참고했다. 시를 하나 인쇄한 후, 글자 크기를 서정윤 시집의 글자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제목과 본문의 글자 크기를 서정윤 시집과 동일하게 맞췄다. 같은 방식으로 줄 간격, 제목과 본문 사이의 간격도 맞췄다. 그러고 나서 여백을 맞췄는데, 역시 서정윤 시집을 참고하여 상하좌우의 여백 크기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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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써 준 시들>


페이지별 구성이 마무리된 후에 시의 순서를 조정했다. 애초에 아이가 정해준 순서가 있어서 처음에는 그 순서대로 시를 정리했는데, 그러고 나니 두 페이지에 걸쳐있는 시가 페이지 앞뒤로 배치되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래도 두 페이지짜리 시는 책을 펼쳤을 때 좌우로 보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되도록 시의 배치를 조정했다.


다음으로 페이지를 넣고, 시의 제목과 페이지를 이용하여 '차례'를 구성했다. 타이틀 페이지도 만들었는데, 역시 서정윤 시집과 동일한 구성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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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과 차례 페이지. 서정윤 시인의 시집을 따라했다.>


본문을 다 정리한 후에 표지를 만들어야 했는데, 표지는 인쇄하는 곳의 가이드를 따라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제본을 해주는 온라인 사이트를 몇 군데 검색한 후 적당한 곳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해당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는 정보에 맞게 표지를 구성했다. 인터넷에서 양식을 좀 찾아봤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그냥 내가 디자인을 하기로 했다. 예전에 아이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디자인을 참고하면 아이가 좋아할 만한 표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실루엣 이미지를 몇 개 다운로드한 후 적당히 책의 표지를 만들었다.


cover.jpg <표지는 실루엣 이미지를 다운로드하여 적당히 구성했다.>


표지까지 만든 후에, 사이트의 요구사항에 맞게 파일을 정리하여 인쇄를 의뢰했다. 단, 처음에는 5권만 먼저 의뢰했는데, 실물을 보고 고쳐야 할 부분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기를 잘했던 것이, 내용상 수정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인쇄가 잘못되어 다섯 권이 모두 파본이 되어 있었다. 사이트에 말해서 다시 다섯 권을 받았고, 잘 인쇄된 것을 확인한 후에 추가 주문을 했다. 추가 주문을 두 번 했는데, 총 50권 정도 만들었던 것 같다.


아이는 무척 만족해했고, 50권 대부분을 아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다. 막상 책으로 나온 것을 보니, 역시 글은 책의 형태로 있는 것이 더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그동안 썼던 시들을 잘 모아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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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아이의 첫 시집>


아이는 시집을 한번 만들고 난 후에는 시를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흥미가 떨어진 것인지, 다른 데 흥미가 붙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시를 계속 써서 2집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브런치 북으로 발행한 것을 제본해서 가져볼까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제본해서 가지고 있으면 필요할 때 참고 삼아 보기도 좋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귀찮아서 손을 대지 않게 된다. 이렇게 귀찮은 것이 아이 책을 만들 때는 전혀 귀찮지 않았으니, 이런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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