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를 방문한 것이 한 번 뿐이기는 하지만, 일주일 정도 머물렀기 때문에 은근히 가본 곳이 많은 것 같다. 그중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제외하고 기억에 남는 곳 몇 군데를 정리해 봤다.
타이베이를 생각하면 꼭 생각나는 것이 '지열곡'이다. 내가 온천을 많이 안 다녀 봐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열곡에서 본 풍경은 다른 데서 본 기억이 없는 풍경이었다. 물 빛깔도 신비스러운 빛깔이었는데, 거기에 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옛이야기에 나오는 신비로운 장소를 보는 것 같았다.
지열곡에서 조금 내려오면 물이 흐르는 곳이 있는데, 보기에는 보통 하천처럼 보이지만 발을 담가보면 물이 상당히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주변에는 족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계곡 같이 생긴 곳에 따듯한 물이 흐르고, 거기에 발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 무척 신선했다.
정원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바로 나다)이라면 임가화원이 볼 만하다. 말 그대로 임 씨 집안의 정원인데, 규모도 큰 편이고 풍경도 보기에 좋았다. 중국식 정원은 이후에 항주에서 한 번 더 보게 되었는데,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중국 정원만이 주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일본식 정원과 비교하면 좀 더 힘이 느껴진다고 할까?
단수이는 타이베이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랜드마크 같은 것이 있다기보다는, 타이베이와는 또 다른 풍경을 간직하고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강변을 걷는 것도 괜찮고, 안쪽에도 걸어 다니면서 볼만한 풍경이 더러 있다.
교회, 대학, 예전 영사관 건물 등이 있는데, 유럽 풍 건물들이 많이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마카오 풍경하고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유명한 담강고급중학교가 있다. 내가 갔을 때는 rest time이라는 팻말로 입구를 막아 놓았는데, 시간만 잘 맞으면 안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 같았다.
큰 꽃 시장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과연 규모가 상당했다. 암스테르담 꽃시장도 둘러본 적이 있는데, 내 기억에는 타이베이의 꽃 시장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정작 양재 꽃 시장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해외에 있는 꽃 시장을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꽃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꽃에 엄청 진심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꽃을 보면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꽃 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꽃 시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장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시장은 그 도시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곳이면서 도시마다 특색이 두드러지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에서도 시장이나 노점들을 많이 둘러봤는데, 역시 시장 구경은 언제 해도 여러 번 해도 재밌는 것 같다.
타이베이는 언뜻 보면 다른 데서 본 것 같은 도시지만, 자세히 보면 특색이 느껴지는 묘한 도시다. 그들이 겪은 독특한 역사가 도시 곳곳에 쌓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소박한 관람과 소소한 발견을 즐기는 여행객에게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것을 보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한적하게 쉬다 오는 여행이 필요할 때, 타이베이가 또 생각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