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였던 것 같다.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어떤 개그맨이 재미있는 입담을 풀어내고 있었다. 패널에 적혀있는 '서태지 결혼'이라는 글자를 보여준다. 그리고 덧붙여져 있는 종이를 떼어내자, '서태지 음악과 결혼'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번에는 패널로 '박찬호 구속'이라는 내용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내, '박찬호 구속 145km/h'라는 내용으로 바꿔 버린다.
그 개그맨이 창조해 낸 말장난이 아니었다. 당시, 신문들 중에는 '연예 신문' 같은 느낌의 신문들이 있었다. 그 신문들의 1면 제목이 보통 이런 식이었다. 개그맨은 제목으로 독자를 낚으려는 신문의 행태를 비꼬았던 것이다. 그런데, 요새는 이런 일이 주류 언론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삼류 언론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일류 언론들이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레기'라는 말이 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말로써, 기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사람을 지칭하는 말에 '쓰레기'를 합성한 것은 조금 심한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기자들이 자초한 면이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잊은 듯한 모습들과 품질 낮은 기사들,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난 낮은 수준들이 이 용어를 퍼져나가게 만들었다. 거기에, 기자들의 제목 낚시에 속은 독자들의 분노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기자들이 제목 낚시를 하게 된 것에는 환경적인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언론의 숫자도 많지 않았고, 1면 기사는 대체로 비슷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주로 보는 신문을 꾸준히 구독했다. 그래서, 제목으로 독자를 낚을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 포털이 뉴스 구독의 중심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배급 시스템이 필요 없는 만큼 많은 언론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구독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매일 독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독자들이 기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바로 기사의 '제목'이었다.
바야흐로 클릭수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제목을 클릭한 독자가 내용을 보고 분노하더라도, 일단 클릭수는 올라간 뒤다. 게다가, 제목만 노출되고 언론사나 기자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는 포털의 페이지에서는, 독자가 같은 언론사, 같은 기자에게 반복해서 속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포털은 클릭수가 높은 기사들을 더 많이 노출하려고 한다. 클릭수는 포털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제목 낚시에는 포털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생각한다.
제목 낚시는 사실 기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제목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는 서비스에서는 제목 낚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유튜브다. 유튜브에는 제목 낚시와 썸네일 낚시가 많다. 물론, 제목과 게시자가 함께 표시되기 때문에 한 번 속은 게시자에게 다시 속는 일은 많지 않겠지만, 아직 속은 적이 없는 사람들은 쉽게 속을만한 구조다. 그리고, 이런 제목 낚시가 잘 통하면 조회수가 몇 십만에서 몇 백만 정도는 나오는 것 같다.
요즘은 알고리즘이 고객에게 보여줄 콘텐츠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알고리즘도 클릭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기다, 검색 알고리즘 같은 경우는 제목에 크게 의존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알고리즘의 존재가 제목 낚시를 부추긴다는 생각도 든다. 알고리즘이 가짜 뉴스의 전파를 촉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제목은 중요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좋은 제목을 정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독자가 흥미를 가질만한 어구를 제목에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독자가 제목을 보고 상상했던 것이 내용과 연결되거나, 아니면 내용을 읽은 후에 제목의 의도가 이해되어야 한다. 내용을 읽은 후에도 내용과 연결되지 않는 제목이라면, 적절한 제목이라고 볼 수 없다.
취미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클릭수를 무시할 수는 없다. 제목으로 고객을 낚으려는 창작자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제목 낚시로는 고객의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오히려 어렵게 쌓아두었던 신뢰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따라서, 창작자로서 오래 활동하고자 한다면 제목 낚시의 유혹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개발자들도, 제목보다는 내용을 기준으로 콘텐츠를 추천하는 데 힘썼으면 한다. 결국은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동작 원리가 콘텐츠 창작자들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