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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는 것이다

by 취한하늘

사춘기는 나에게 큰 격변이 있었던 시기다. 외부적으로 눈에 띄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 자아는 사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다. 그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이,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였다. 사춘기 시절에 많이들 하는 고민일 텐데, 나에게도 무척 심각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중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웠던 '데미안'도 그래서 열심히 읽었다.


엄청나게 넓은 우주에서, 엄청나게 긴 시간 속에서, 내가 차지하는 공간과 시간은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결국은 우주의 먼지만큼의 의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삶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생각되었고, 그래서 서른 살까지만 살자고 결심한 적도 있다.


그래도 죽기는 싫었나 보다. 서른 살까지 살자고 한 것도 결국은 서른 살까지는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리 것이니까.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았던 것도, 내 나름대로 삶의 이유를 설정했던 것도, 어쨌든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테니까.


그러다가 대학교 때, 어느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보여준 영화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중국 영화였고,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었다. 모택동의 군대에 복무했다가 집에 돌아온 주인공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격변의 세월 속에서 주인공은 가족을 하나하나 잃어 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 남은 손자마저 사고로 주인공의 곁을 떠난다. 그래도 주인공은 삶을 이어간다. 삶은 다른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것이므로.


죽기 싫었던 내 마음이 정답이었다. 삶에는 거창하고 우아한 이유가 필요 없다. 일단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이었다. 인간은 원래 생존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생존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삶은 바로 생존을 추구하는 투쟁의 과정이다. 그것이 너무 고상하지 않아서 자꾸 다른 것을 찾으려 들어도, 죽기 싫어서 산다는 것이야말로 삶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 중에, 생존을 위한 투쟁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의 생존을 보장해 주기 위한 활동이야말로 가장 이타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기술을 만들고, 좋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모든 활동이 칭찬받을만한 일이지만, 자신과 타인의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생존해 보고자 한다.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재와 미래의 위험들로부터 좀 더 도망쳐 보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다. 내일이면 어떤 고상한 말로 내 삶의 이유를 다시 포장하려 들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의 데미안은 언제나 나에게 외쳐대고 있다. 열심히 살아남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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