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어른들한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을 보낸 분들이 하는 말이라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입고, 먹고, 자는 것에 문제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어른들이 그 시절의 젊은이들에게, '너희는 좋은 세상에 태어났구나'라고 말하던 것은 지금도 납득이 된다.
그런데,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우리 세대나 우리 앞 세대가 지금의 젊은 세대를 보며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고 얘기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본인들이 젊은 시절에 겪었던 무용담을 얘기하면서,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니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경우들이 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도 있지만, 과연 지금의 젊은 세대는 더 좋아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 성적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그냥 잘 놀기만 하면 됐다. 심지어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정도의 성적이면 충분했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았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좋은 일이었지만, 소위 명문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때만 열심히 공부해도 충분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에 내몰리는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 되면 여러 개의 학원을 반강제적으로 다니게 된다. 심지어, 좋은 학원에 가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까지 한다.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다. 경쟁에서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의식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교에 가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때는 1, 2학년은 노는 시기였고, 3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그런데, 요새는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스펙 관리도 예전에는 선택 과목이었다가 지금은 필수 과목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재산 형성 과정도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우리 앞 세대에서는 은행에 저금만 잘해도 집을 살 수 있었다. 외지에 가서 몇 년 열심히 일하면 꽤 큰돈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심지어 재테크를 열심히 해도 집을 장만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그 시절의 사람들이 돈을 쉽게 번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사람들도 재산을 형성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수단 자체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분명 살기 좋아진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줄기라고 할 수 있는 교육과 취업, 그리고 그 결과로 이어지는 재산 형성에 있어서는 과연 우리 사회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부의 편중은 더 심해졌고, 기득권층은 더 효과적으로 기득권을 방어하고 있다. 교육까지 자본의 지배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어쩌면,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삶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이미 해결한 세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보냈던 낭만의 시기들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선택권도 없이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