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에도 좋아하지만, 여행을 할 때는 더 좋아한다. 걸어 다니며 보는 풍경이 모두 새롭기 때문이고, 낯선 곳에서 느끼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많이 다닌다. 파리를 예로 들면, 에펠탑에서 루브르 박물관까지 정도면 걸어서 가는 편이다.
로마에서도 많이 걸었다. 아니, 거의 전부 걸어 다녔던 것 같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유명한 곳들 위주로 보게 되지만, 걸어 다니면 유명한 곳과 유명한 곳 사이의 안 유명한 곳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로마는 그런 일상적인 거리의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였다. 그래서 걸어 다니는 것이 더 좋았다. 파리를 방문하면 한적한 공원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로마에 다시 방문하면 아마도 산책을 즐길 것 같다.
로마에도 강이 있다. 런던의 템즈 강과 파리의 센 강은 도시만큼 익숙한데, 어쩐 일인지 로마의 강은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테베레 강이었다. 로마의 거리 풍경은 파리의 거리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테베레 강의 풍경은 센 강의 풍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과 다리, 강변과 주변 노점들이 이루고 있는 모습이 파리의 센 강과 닮았다. 테베레 강의 사진을 보여주며 센 강이라고 하면, 파리에 가봤던 사람들은 속을 것도 같다.
베네치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독특한 도시 형태에 매료되었다. 수많은 골목들이 있고, 그 중간중간에 작은 광장들이 있는 구조였다.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비록 베네치아만큼은 아니지만, 로마에서도 '광장과 길'의 형태를 조금은 느낄 수가 있었다. 베네치아에 비해 길과 광장의 크기만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래서, 도시가 아니라 동굴이나 정글, 혹은 미로를 걸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다.
로마에는 유명한 트레비 분수가 있다. 처음 트레비 분수를 보면 일단 규모에 압도당한다. 높이가 26미터, 너비가 49미터라고 하니, 이 정도 크기를 가진 것을 '분수'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무언가 다른 명칭을 따로 붙여야만 할 것 같았다. 크기도 크지만, 그 모습이 매우 멋져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 같았다.
로마에는 트레비 분수 말고도 많은 분수가 있다. 그리고, 분수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 분수들을 보면서, 로마 사람들은 분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요즘 말로 '분수에 진심인' 로마 사람들인 것이다.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간식거리를 즐길 때가 있다. 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심심한 입을 달랜다. 로마에서도 몇 가지 간식을 즐겼는데, 그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군밤과 젤라토다. 일단, 젤라토는 매일 먹었다. 아무리 유명한 음식이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 입에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로마의 젤라토는 내 입에 너무 잘 맞았다.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젤라토를 즐겼다. 그리고, 군밤.
로마의 거리에서 군밤을 발견했을 때, 반가우면서도 뭔가 어색했다. 생각해 보면, 세계 어디서나 밤을 구워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해외 도시에서 군밤을 대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사실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어쨌든 반가운 마음에 냉큼 사 먹었고, 다행히 한국에서의 맛과 비슷했다. 외국에서 이것저것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국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겼는데도 맛은 전혀 다른 것들이 있다. 로마의 군밤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로마를 걸어 다니는 것이 재밌다. 곳곳에 있는 역사의 흔적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도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면 이동 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로마에서는 한가롭게 산책을 즐겨보면 어떨까 한다. 로마에 있는 무언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로마를 보러 가면 어떨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