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투어는 별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부 투어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폼페이가 무척 보고 싶었고, 로마에서 폼페이를 당일로 혼자 다녀오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에 투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폼페이를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폼페이는 화산의 폭발로 한순간에 멸망한 도시다. 한 때는 전설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16세기에 우연히 발견되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이후 18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현재도 여전히 발굴이 진행 중에 있다.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화산재로 뒤덮여버렸고, 인구의 10%가 사망하는 큰 재난을 겪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재난으로 인해 로마의 어느 도시보다 현재까지 고대 로마의 모습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로마에도 고대 로마의 유적이 많이 있지만, 폼페이만큼 옛 모습을 잘 보여주지는 못한다. 도로 체계나 시설들을 보면 도시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마에서는 상상력을 많이 동원해야 했지만, 폼페이에서는 그럴 필요가 별로 없었다. 본래의 모습이 워낙 잘 보존되어 있어서, 유적 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잘 발달된 도시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은 없고 도시만 남은 현재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처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있다가 없어진 자리의 풍경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빈자리의 사진도 많이 찍는다.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채워졌던 공간에 물건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어쩐지 삶 자체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폼페이는 도시 전체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폼페이 관광을 마치고 투어버스는 사진 찍기 좋다는 곳으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본 풍경은 과연 사진 명당이라고 할만한 풍경이었다. 지중해 풍경도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지만, 해안가에 형성된 마을의 풍경이 너무 멋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포지타노'라는 곳의 풍경인 것 같았는데, 마치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 있는 마을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포지타노 안으로는 이동하지 않고, 대신 '소렌토'라는 마을에 들러 마을 구경을 했다. 소렌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노래 제목이나 자동차 이름 때문에 어쩐지 익숙한 곳이다. 마을 자체는 크게 인상적인 것은 없다. 다만,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를 방문해 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 둘러볼만할 것 같다. 프랑스 남부로부터 이탈리아 남부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들이 갖는 고유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런 분위기를 소렌토에서도 잘 느낄 수 있다.
폼페이 때문에 참가한 투어지만, 포지타노와 소렌토의 풍경도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어서 무척 만족스러웠던 투어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쯤 가볼 만 하지만 그곳만을 목표로 가기에는 애매한 곳들이 있다. 폼페이와 소렌토도 그런 곳이어서, 로마를 가는 김에 들리지 않았다면 평생 갈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유명한 도시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 도시로부터 쉽게 다녀올 수 있는 다른 곳을 함께 알아보는 것이 여행을 풍성하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