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가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로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바티칸을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후의 만찬'을 보겠다는 생각만으로 밀라노를 방문했던 나였기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티칸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다.
바티칸은 싱가포르나 모나코처럼 도시이면서 동시에 나라인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인데, 검색해 보니 바티칸의 면적이 44헥타르이고, 경복궁의 면적이 43헥타르이다. 경복궁보다 약간 큰 면적에 2019년 기준으로 825명이 살고 있는 나라이자 도시인 것이다. 이렇게 작은 도시가 오랜 세월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바티칸은 바티칸 투어를 이용해 방문했는데, 가이드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줘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투어는 크게 바티칸 미술관, 시스티나 경당,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세 장소로 나뉘며, 세 장소 모두 흥미로웠고 인상적이었다.
바티칸 미술관에는 볼만한 작품이 여럿 있었다. 다만, 미술관 특성상 주제가 한정적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라파엘로, 다빈치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있으니, 미술품 관람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로마에 온 김에 꼭 들릴만한 곳이 아닌가 싶다.
가장 관심을 두고 있던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에 그려져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처럼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이때 가이드가 설명을 해줘서 알게 됐는데, '천지창조'는 정확한 작품명이 아니며, '천장화'라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이 '천장화'를 그리는 데 꼬박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나마 중간에 바닥으로 내려와서 그동안 그린 걸 올려다본 미켈란젤로가, '자세히 그려봤자 잘 보이지도 않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이후 디테일한 표현을 포기한 덕분에 4년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미켈란젤로를 싫어하는 사람이 교황에게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를 추천해서 원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천장화'의 시작이라고 하니, 한 사람의 미움이 미술사에 큰 유산을 남긴 셈이다.
실제로 현장에 가서 '천장화'를 보면, 과연 천장이 너무 높아서 그림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망원경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림을 자세히 보고 싶은 사람은 망원경을 준비해서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품 관람도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성당 입장 마감 시간이 지나도록 대성당에 입장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성당 측에서 야간까지 문을 열어 성당에 입장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성당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 준 덕분에 성당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큰 교회나 성당을 많이 봤지만,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데도, 위압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친누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친구나 지인 중에도 신앙심 깊은 천주교 신자들이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면서, 그 사람들에게 바티칸 방문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닿으면 교황이 주관하는 미사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하니,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커다란 감흥이 존재할 것 같다. 어쩌면 로마에 온 김에 바티칸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바티칸에 오는 김에 로마를 구경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작아서 도시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헷갈리는 도시 바티칸. 하지만, 역사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시 바티칸. 그리고, 지금도 어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세계 어느 도시보다 큰 도시인 바티칸. 만약, 로마에 갈 일이 있다면, 바티칸을 방문하는 일정을 포함시켜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