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근 시간
이른 아침, 다른 날보다 일찍 나섰기 때문에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시간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도시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구나. 전광판은 2분 후에 열차가 들어올 것을 예고하고 있고, 벤치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줄을 서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 상단에 있는 광고 스크린을 보니 L사의 신형 인큐베이터 광고가 나오고 있다.
'최대 5개 국어까지 습득 가능!!'
'미국 유명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최신 커리큘럼 제공!!'
'DNA 분석 결과에 따라 자녀에게 맞는 최적의 커리큘럼을 추천합니다.'
'자사 인큐베이터 출신의 5대 기업 취업률 95% 달성!!'
'자사 인큐베이터 출신으로 유망 직종 진출자 6년 연속 1위!!'
'자녀에게 보장된 미래를 선물하세요.'
인큐베이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를 기계에 넣어서 교육시킨다는 것에, 처음에는 당연히 저항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효과에 대해서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인큐베이터 출신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사회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는 사례들이 나오면서 점점 더 많은 부모들이 인큐베이터를 이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맡기고 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는 많지 않다.
인큐베이터 기술도 많이 발달하여, 처음에는 취학 전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던 것이, 지금은 5세부터 19세까지의 과정을 모두 인큐베이터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성장기에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보내게 된다. 그래서, 인큐베이터 출신들에게는 생일만큼이나 중요한 기념일이 하나 존재하는데 바로 인큐베이터를 졸업한 날이다. 그날부터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고 하여 '재탄생일'이라 부르기도 하고, 비꼬는 뉘앙스를 담아 '발매일'로 불리기도 한다. 나의 발매일은 2025년 11월 17일이다.
차량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회사까지 앉아서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찍 나오면 편하게 앉아서 출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가당치도 않은 기대였나 보다.
지하철 차량 안에서도 인큐베이터 광고가 눈에 띈다. S사의 인큐베이터 광고다. 대부분의 부모가 인큐베이터를 이용하고 있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다 보니, 인큐베이터 시장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각 기업마다 자사 제품에 별도의 이름을 붙이고 열심히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품이 제품이니만큼, 광고는 대부분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품이 가진 장점, 제품이 자녀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줄지를 강조한다. 주로,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을 모델로 활용한다.
인큐베이터의 가격이 워낙 비싸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자녀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어주고 싶어 하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좋은 인큐베이터를 이용하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은행권에서는 이미 인큐베이터를 위한 전용 대출 상품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그리고,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간혹 인큐베이터가 오작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자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매우 낮은 확률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인큐베이터 이용이 그것 때문에 줄어들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인큐베이터 보험 상품에도 같이 가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다음 역은 판교, 판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다 왔다. 출근하면 기획팀으로부터 기획 문서가 와 있을지 궁금하다. 원래 어제 작업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기획서가 전달되지 않아 시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출근을 조금 서둘렀다. 혹시 밤 사이에라도 기획서가 도착했으면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팀에서 한 번도 일정을 맞추지 못한 적이 없기 때문에 어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작업하면 전체 일정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2. 회사 카페테리아
회사 건물 1층에는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공짜는 아니지만 아주 싼 가격에 커피나 음료를 마실 수 있어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공간이다. 보통은 여기서 바닐라라테를 한 잔 사 가지고 올라가서 오전 업무를 진행하는 데, 지금은 같은 팀의 동료 D, H와 함께 카페테리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H가 커피 용기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그러게요. 시간에 대해서는 늘 철저한 사람이었는데.. 덕분에 이렇게 예정에 없던 여유가 생겼네요."
H의 말을 받으며 내가 말했다. 기획서는 오늘 아침에도 공유되지 않고 있었다. 기획서가 없이는 일을 더 진행시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만에 카페에서 얘기나 나누자고 내려온 참이었다.
"문제가 조금 있는 것 같더라고요."
D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얘기를 꺼냈다.
"문제요? 어떤 문제요?"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은 H가 바로 되물었다.
"저도 아는 사람한테 들은 얘긴데, Y님이 꽤 오래전부터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다고 하더라고요."
Y는 우리에게 기획서를 전달해야 하는 그 기획자다.
"아.. 그럼 그것 때문에 지금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나 보네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제 지인들 중에도 공황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몇 명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많이 힘든 것 같더라고요."
나도 요즘 들어 주변에서 공황장애 얘기를 많이 듣는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미디어에서도 심심치 않게 공황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공황장애가 갑자기 생긴 병은 아니지만, 근래에 부쩍 많아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D님 첫째가 이제 다섯 살 되지 않아요?"
평소에도 대화를 주도하는 편인 H가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네, 다음 달이면 다섯 살이죠."
"아, 그럼 인큐베이터는 준비하셨어요?"
"아직 확실히 정하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L사가 최근에 내놓은 제품으로 할 것 같아요. L사 제품이 대체로 평이 좋더라고요."
"그렇죠. 저도 주변에 애 키우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L사 제품을 제일 많이 쓰더라고요. 근데 이번에 새로 나온 제품은 가격이 장난 아니던데요. 너무 비싸지 않나요?"
"비싸죠. 그래도 대출을 받아서라도 좋은 걸 써야 할 것 같아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다른 걸 좀 덜 쓰더라도 인큐베이터는 최대한 좋은 걸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바로 전 모델하고 비교해보니 성능이 비슷한 것 같은데, 가성비 생각하면 전 모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가격은 꽤 많이 차이나던데요?"
이번에는 내가 끼어들어 물었다. 최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인큐베이터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게 되었는데, 최신 모델에 비해 이전 모델은 가격이 많이 저렴한 편이었고, 성능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가성비를 따질 수가 없었어요. 인큐베이터 성능의 작은 차이가 아이의 미래에는 큰 차이가 될 수도 있잖아요. 아,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최신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가성비가 더 좋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D의 대답에 나도 반박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고,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럴 것 같다.
"우리 회사만 해도 보세요. 좋은 인큐베이터 출신들이 승진도 빠르고 잘 나가잖아요. 당장, 채용만 해도 좋은 인큐베이터만큼 좋은 스펙도 없을 거예요. 그게 현실이죠."
"하지만, 좋은 인큐베이터 출신이 아닌데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우리 아트 디렉터도 업계에서 손꼽히는 디렉터인데, 제가 알기로는 학교 출신일걸요?"
H가 D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며 물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건 일부의 이야기잖아요. 낮은 확률에 아이의 미래를 걸 수는 없죠. 크게 보면 결국 좋은 인큐베이터 출신들이 더 성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공부 안 하고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안 시켜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D가 연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고 대답했다.
"혹시 아이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소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쪽은 인큐베이터와는 상관없죠?"
호기심 많은 H가 여전히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인큐베이터 이용에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더 알고 싶어서 던지는 의문들인 것 같다.
"연예인, 운동선수, 아니면 예술가.. 이런 직업은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 다섯 살도 안 된 아이가 그런 소질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나중에라도 소질이 발견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 그런 베팅을 할 수는 없죠. 게다가 운동이나 예술 쪽은 몇 명만 성공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힘들게 살잖아요. 웬만하면 그쪽으로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아무래도 D는 인큐베이터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아요?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그렇게 해야 되나?"
"부모의 역할이란 게 다 그런 거죠. 그래도 15년만 열심히 투자해 주면, 그다음부터는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 테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기 삶을 살 수 있잖아요. 우리도 그 덕에 이렇게 살고 있는 거고요."
D의 대답을 들으면서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해 봤다. 기획팀으로부터 새로 도착한 메일이 아직 없었다. 오늘 중으로 기획서를 못 받으면 일정 협의를 다시 해야 할 것이다. Y가 얼른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3. 점심시간
"여기야!"
식당 문을 열고 머리를 뒤로 묶은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들어오자마자, 손을 흔들며 내 위치를 알렸다. 여자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점심을 같이 하는데, 요즘은 결혼 준비 때문에 거의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있다.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나도 조금 전에 왔어. 점심시간에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곳인데, 조금 일찍 오니까 자리가 많네?"
"아마 한 20분 지나면 자리 다 차고, 밖에 줄 서는 사람 생길 거야."
"나는 잘 모르니까, 메뉴는 네가 시켜"
"알았어."
여자 친구가 점원을 불러 능숙하게 음식을 시키고, 그 사이에 나는 숟가락 등 음식 먹을 준비를 해놓았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결혼 준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누었다. 요새는 만나기만 하면 대부분 이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혼식을 거창하게 하지 않고, 허니문에서 둘 만의 기념식을 갖는 것이 요즘의 결혼 트렌드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축하는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최근 우리의 대화도 대부분 허니문에 대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여자 친구가 새로운 얘기를 하나 꺼냈다.
"혹시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학교? 뜬금없이 웬 학교?"
"응. 결혼한 아는 언니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인큐베이터랑 학교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나눴거든. 여전히 인큐베이터를 이용하는 게 대세지만, 최근에는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대. 그 언니도 아이를 학교에 보낼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더라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글쎄... 학교에 보내는 것이 더 좋다는 얘기도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진로를 생각하면 역시 인큐베이터를 쓰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여자 친구는 이미 아이를 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인큐베이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지만, 당장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여자 친구와 이 문제로 부딪힐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의 생각이 궁금하기는 했다.
"물론, 인큐베이터를 쓰면 외국어도 잘하게 되고, 아는 것도 더 많아지겠지만, 그게 꼭 행복한 인생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들이 있는데,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면 지식만 얻고 다른 것은 오히려 잃게 되니까. 우리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양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팔에 의지하듯 몸을 앞으로 숙이며 여자 친구가 말했다. 아무래도 금방 끝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사회성 같은 건 어른이 되어서 배워도 되지 않을까?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진로를 확보하면서 배워도 되는 거 아냐?"
나도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니지. 오히려 사회성 같은 걸 성장기에 배워야지. 성장기가 지나고 나면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잖아. 공부야 말로 조금 늦게 해도 되는 거 아냐? 늦게 공부해도 얼마든지 좋은 진로를 찾을 수 있어. 그리고 실제로, 학창 시절을 전부 인큐베이터로 보낸 우리 세대가 많이 듣는 얘기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거잖아. 우리 세대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우리가 제일 잘 알지. 안 그래?"
여자 친구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분명히,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도 사회생활을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학교에 보내면, 학교에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잖아. 친구들끼리 다투거나 감정싸움을 할 수도 있고, 심해지면 따돌림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어. 아이한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생길 수도 있고."
나는 약간 관점을 달리 해서 질문을 던졌다.
"좋은 일만 겪으면서는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쁜 일도 겪고, 슬픈 일도 겪으면서 사람이 성장하는 게 아닐까? 힘든 일을 겪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배워야 더 힘든 일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잖아. 물론 혼자서 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게 쉽지는 않겠지.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 부모의 입장에서도 인큐베이터를 이용하면 편하겠지. 신경 쓸 게 적어지니까. 하지만, 그건 그냥 부모가 해야 할 역할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아."
여자 친구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요즘 정신과 치료받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 들었지? 우리 회사에도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받는 사람이 은근히 많아. 그게 인큐베이터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 인큐베이터는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들은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한 채로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건 근거가 부족한 얘기야. 정신과 치료받는 사람은 그전부터 많았어."
"하지만, 최근에 부쩍 더 많아졌지. 지금처럼 정신과가 호황을 누리는 시기는 없었을걸?"
여자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밝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도 알고 보니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부모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야"
여자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인큐베이터를 이용하는 부모들에 비하면 계속 소수일 거야. 어쨌든 우리도 인큐베이터 덕에 이만큼 살고 있는 셈이니까."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점원이 우리가 주문한 떡볶이를 들고 왔다. 음식이 도착하면서 화제가 자연스럽게 다른 것으로 넘어갔고, 우리는 떡볶이를 먹으며 다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4. 퇴근 후 카페
'타닥타닥'
회사를 퇴근하고 나면, 집 근처 카페로 두 번째 출근을 한다. 테이블이 3개뿐인 작은 카페인데, 손님이 별로 없고, 그나마도 테이크아웃 손님이 대부분이라서 편하게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카페다. 사장님과도 친해져서 요즘에는 이곳에서 노트북으로 글 쓰는 취미 생활을 한다. 오늘도 나 외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조용한 카페를 내 타자 소리가 채우고 있다.
'타닥타닥'
"결혼 준비는 잘 되세요? 요새 한창 바쁘겠네."
주문한 그린티 라테를 건네주며 사장님이 인사말처럼 물었다.
"아, 준비를 일찍 시작한 편이라서 여유 있게 준비하고 있죠."
사장님의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낮에 여자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사장님은 혹시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장님은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평소에 책도 많이 보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서 사장님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다.
"갑자기 그건 왜요?"
"아, 낮에 여자 친구랑 학교에 대해 얘기를 좀 나눴거든요."
나는 낮에 여자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사장님에게 해주었다. 커피를 내리며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은 자신의 커피를 들고 와 나와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음... 뭐랄까... 제가 뭔가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네요. 사실, 제가 학교 출신이거든요."
사장님이 말했다. 나는 사장님도 당연히 나와 같은 인큐베이터 출신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학교 출신이시라고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S대 나오시고, K사에서 일하셨다고..."
"학교 출신이면 S대 못 가고, K사에 못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편견을 들킨 것 같아, 약간 부끄러웠다.
"인큐베이터를 이용해야만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학교를 다녔어도 얼마든지 유망한 직업을 가질 수도 있죠. 물론, 제가 학교를 다녔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런 면 때문은 아니지만요."
"그럼 어떤 면이 좋았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사장님의 삶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내가 물었다.
"내 삶에 대해서,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죠. 인큐베이터를 이용한다는 건, 그냥 누군가가 짜 준 계획표대로 성장하는 거잖아요. 저는 제가 선택한 책을 읽고, 제가 선택한 고민들을 했어요. 그 고민을 친구들과 같이 나눌 수 있었고요. 그렇게 제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죠."
사장님이 드립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누군가가 알려준 '비급'을 따라가면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죠.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을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일까요?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휴먼의 삶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하고 있지만 지금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물론, 그 회사를 들어간 것도 후회하지는 않아요. 어쨌든 모든 게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요즘 학교와 관련된 콘텐츠들이 인기가 많죠? 그걸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세요?"
사장님의 질문을 듣고 생각하니, 과연 학교와 관련된 콘텐츠가 최근에 트렌드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방송을 잘 안 보는 편인데도, 학교와 관련된 방송을 가끔 보면 재밌다.
"글쎄요. 딱히 무슨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데, 재밌기는 하더라고요."
"그런 콘텐츠가 유행을 타는 건, 그것이 사람들의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에요. 인생에 있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그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자신에게 갈증으로 남아있는 것 때문이죠."
잠시 뜸을 들이고 다시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많은 인큐베이터 출신들이 자신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어요. 성장기에 고민해야 하는 것을 고민해보지 못하고, 경험해야 하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다 뒤늦게 그런 고민이 찾아오는 거예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말이죠. 나는 누구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나는 언제 행복하지?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지? 배가 출항하기 전에 자신이 타야 할 배를 선택해야 하는데, 남이 선택해준 배를 타고 나서야 자신의 목적지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이미 배를 갈아타기는 쉽지 않을 때에 말이에요."
사장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들을 찾아낼 수 없었다. 아니, 적당한 생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카페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불행해 보이나요? 돈을 많이 못 벌어서?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해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해서? 어떤가요?"
사장님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봤다.
"아뇨. 충분히 만족스럽게 사시는 것 같아요."
정말로 그랬다. 내가 보는 사장님의 모습은 늘 여유로웠고, 늘 편안해 보였다.
"제 삶이 정답은 아니겠죠. 사람들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삶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에게는 인큐베이터를 이용한 삶이 더 맞을 수도 있을 테고요. 인큐베이터를 이용하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것도 그다지 부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사람은 거의 없죠. 모두들 부모의 선택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부모들도 사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 자신의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하고 있고요. 내 아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서 말이죠."
사장님은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마지막 말을 꺼내놓았다.
"저는 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편안한 삶이든 고단한 삶이든, 제 삶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죠."
"전 아직, 잘 모르겠네요."
한참을 테이블 위에 장식처럼 놓여있던 그린티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지만 온기가 사라진 라테가 내 몸속을 적시고 있었다.
5. 집
샤워를 하고 나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기획팀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기획서가 준비되었다는 메일인 줄 알았는데, 열어 보니 다른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주 내에는 기획서 준비가 힘들 것 같으니 일정 협의를 다시 진행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담당 기획자를 L로 변경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