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도둑

by 취한하늘

1


"또 놓쳤다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형사의 뒤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치겠어. 이번엔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전의자에 앉은 채로 동료 쪽으로 몸을 돌리며 형사가 말했다.

"이제 그만 젊은 애들한테 넘기라니까. 우리 때랑은 이제 많이 다르다구. 요즘 해커는 우리들이 따라가기에는 버거워. 다음 세대 해커는 다음 세대 형사가 잡아야지."

동료가 자기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딱히 다른 사건도 없는데, 이거라도 붙잡고 있어야지. 게다가 자꾸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니까 오기도 생기고."

"그럼 혼자 하지 말고, 애들한테 도움이라도 받아봐. 요새 그거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는 거 아니야? 저번처럼 또 원형탈모라도 오면 어쩌려고 그래?"

"그런가"

형사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형사도 젊은 형사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어쩐지 불편했다. 아니 정확히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아무튼, 이놈들은 모기랑 같아서 일단 위험하다고 느끼면 숨어서 나오지를 않으니까, 한동안은 어차피 단서도 찾기 힘들 거야.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은데, 어디 가서 좀 쉬다 오지 그래?"

안 그래도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는데, 동료의 눈에도 그것이 보인 것 같았다.

"그래, 나 좀 나갔다 올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줘."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던 재킷을 입으며 말했다.

"알았어. 너무 힘들면 그냥 퇴근해.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거야."

동료가 자기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

짧게 대답하며 형사는 사무실 입구로 향했다.


2


"베드에 올라가서 엎드리세요."

형사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 마사지사가 말했다. 형사는 마사지사가 가져온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베드에 올라가 팔을 위로 올린 채 엎드렸다. 이곳은 시각 장애인 마사지사가 운영하는 마사지 샵으로 형사가 원래도 가끔 이용했지만, 공무원 할인이 적용된 이후로는 더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형사님, 어깨가 많이 뭉치셨네요."

마사지사가 형사의 어깨 부분을 몇 번 짚어본 뒤 말했다.

"그런가요. 요새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봅니다."

형사가 엎드린 채로 대답했다.

"일이 잘 안 풀리세요?"

마사지사가 형사의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그런 일이 하나 있네요."

형사가 대답했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다가 이번에는 형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메모리 레코더를 이용하시나요?"

메모리 레코더는 말 그대로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였다. 사람의 기억을 스캔해서 외부 저장장치에 영상으로 저장해 주는 장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고 특히 젊은 세대는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아니요. 저희 같은 시각 장애인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칩도 안 심으셨겠네요?"

"그렇죠."

메모리 레코더를 쓰려면 먼저 머릿속에 전용 칩을 하나 심어야 했다.

"형사님은 사용하시나요?"

마사지사가 형사의 허리를 압박하며 물었다.

"예전에 몇 번 사용해 보기는 했는데, 지금은 전혀 쓰지 않고 있죠. 딱히 다시 보고 싶은 기억도 별로 없구요."

"그러시군요. 저야 별 쓸모가 없기는 하지만, 다들 쓴다고 하니 궁금하기는 하더라고요."

"예, 처음에는 센터에 가서 기억을 꺼내야 했는데, 지금은 가정용 기기가 보급돼서 다들 집에 레코더 하나씩은 두고 있는 세상이죠. 외국에서는 휴대용 레코더도 나온다는 모양입니다."

"휴대용이요? 세상이 참 금방금방 달라지네요."

마사지사가 등 근육을 위로 밀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아까와 달리 깨지지 않는 침묵이었다. 그동안의 피로 때문인지, 어느새 형사는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3


"그러니까 메모리 레코더를 해킹하는 해커를 추적 중이시라는 말씀이죠?"

형사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젊은 형사가 물었다. 형사와 젊은 형사는 경찰서 휴게실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고, 두 사람의 앞에는 커피 음료가 놓여 있었다.

"그래. 웬만하면 내 힘으로 잡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로는 잘 안되네. 요새 많이 바쁜 건 알지만, 뭔가 조언이라도 좀 받았으면 해서 말이야."

메모리 레코더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메모리 레코더를 해킹당하여 피해를 입는 사례도 늘고 있었다. 부적절한 기억 영상이 유출되어 협박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중요한 비밀 번호가 노출되어 직접적으로 재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새로 개발한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메모리 레코더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인데, 다른 프로그램이 봤을 때는 그냥 그래픽 드라이버처럼 보이고요. 그러다가, 이상한 접근이 감지되면 원래 저장되어 있던 기억 대신 사전에 준비된 기억이 플레이되도록 합니다. 그 사전에 준비된 기억을 이용해서 함정을 만들고 해커를 유인하면 어떨까요?"

형사가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젊은 형사는 사건에 무척 흥미가 많은 듯했다.

"그래?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어?"

"원래 있던 건 아니고, 최근에 문득 생각이 나서 한번 만들어 본 건데요. 생각보다 성능이 괜찮은데,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써먹어 보는 건 어떨까요? 아, 그런데..."

젊은 형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 끝을 얼버무렸다.

"그런데 뭐? 무슨 문제가 있나?"

형사가 재빨리 젊은 형사에게 되물었다.

"함정을 파려면 어디로 올지 알아야 하잖아요? 대규모로 배포할 수도 없는데, 갑자기 난감해지네요."

젊은 형사의 말에 형사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그러나 금세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거라면 나한테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아무래도 놈이 요새 큰 거 하나를 노리는 것 같거든. 얼마 전에 제보가 있어서 제품 개발사에 다녀왔는데, A/S 요청이 들어온 제품 중에 해킹당한 흔적이 있는 것들이 있었어. 그래서 소유자들을 만나 봤는데, 몇몇 소유자에게서 이상한 점이 감지되었지. 분명히 해킹당한 영상에 중요한 정보들이 있었는데, 해킹당한 이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야. 게다가 그 사람들은 모두 같은 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아무래도 그 기업의 핵심 기밀에 접근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일단은 해당 기업에 알려서 조심하라고만 하고, 내 쪽에서는 아직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었거든. 아마 놈은 내가 냄새를 맡았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그러니, 그 회사에 협조 요청을 해서 주요 인사들의 메모리 레코더에 함정을 만들어 놓으면, 조만간 놈이 걸려들지 않을까?"

"그거 괜찮네요. 한번 바로 진행해 보죠?"

젊은 형사가 다소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형사는 이번에야말로 놈을 잡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잘 생각했어. 이제 그 사건은 잊고 그냥 쉬라고."

경찰서 옥상 흡연구역에서 동료가 형사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한 달 전, 후배 형사와 함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도 이번에는 해커를 잡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계획대로 기업에 협조 요청을 하고, 주요 인사들의 메모리 레코더에 해당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그리고, 어느 레코더에 해킹 시도가 있기를 기다렸다. 해킹 시도가 발생하고, 함정 영상을 해커가 보게 되면, 형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커를 유도할 수 있고,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커는 형사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함정을 설치하고 기다린 지 한 달이 지나도록, 해커는 아무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작전은 실패로 종료되었고, 형사는 사건을 후배 형사에게 넘기기로 하였다.

"왜 하필이면 그때 해커가 활동을 멈췄을까?"

연기를 내뱉으며 형사가 질문을 던졌다. 동료에게 던진 질문인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 놈들은 귀신같이 낌새를 알아챈다고. 메모리 레코더 해커에 대한 뉴스도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지니까 위험하다고 느꼈겠지. 그러다가 분위기가 좀 잠잠해지면 다시 스멀스멀 활동을 재개할걸?"

동료가 다 핀 전자담배를 정리하며 말했다.

"걸려들기만 하면 잡을 수 있었는데. 아쉽네."

형사는 사건에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했다.

"애들한테 넘겼으면 이제 그 일은 좀 잊어. 뭐, 꼭 우리가 잡아야 하나? 애들이 알아서 잘 잡을 거야. 나중에 잡히면 얼굴이나 한 번 보러 가자고. 어떤 놈이 내 친구를 그렇게 애먹였는지. 하하하"

동료는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형사는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먼저 들어가. 난 어디 좀 들렀다 갈게."

동료에게 말하며 형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5


"오늘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보리차를 권하며 마사지사가 물었다.

"오늘은 기분이 영 별로네요. 맡고 있던 사건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오는 길이거든요."

형사가 보리차를 받아 들며 대답했다.

"그러시군요. 골치 아픈 일을 넘겼으니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요?"

마사지사가 마사지 준비를 하며 물었다.

"그놈은 꼭 제가 잡고 싶었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제 힘으로는 역부족인가 봐요. 요즘 놈들은 너무 똑똑해서 제가 따라가기가 어렵네요."

형사가 보리차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이란 게,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죠.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세요. 다음 사건, 잘 해결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사지사가 형사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그렇죠.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겠죠."

형사가 마사지사의 얼굴을 바로 보며 말했다. 시각 장애인과 처음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때는 어색한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꽤나 익숙해졌다.

"준비되셨으면 마사지 베드에 올라가 엎드려 주세요."

마사지사가 말했고, 형사는 마사지사의 지시에 따랐다.


십여 분이 지난 후, 형사는 베드에 엎드린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이 잠깐 동안의 숙면이, 형사가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앞이 안 보이는 마사지사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서 있었다.

"그래요. 이제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셨군요."

마사지사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바로 휴대용 메모리 레코더였다. 성능이 안정화되지 않아서 아직은 시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기기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 기계 하나가 마사지사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로부터 연결된 이어폰의 한쪽이 마사지사의 귀에 꽂혀 있었다.

"슬슬 다시 작업을 진행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새 부서에 마사지 영업부터 해야겠네요.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형사님. 제가 볼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으니까요. 흐흐흐"

마사지사는 레코더와 이어폰을 사물함에 정리하여 넣고 다시 형사의 허리를 지그시 압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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