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루틴'이다. 루틴은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말하는 데, 때로는 건강을 위해, 때로는 좋은 습관을 위해 루틴을 형성한다. 그런데, 꽤 많은 루틴들이 단지 당사자가 부여한 '의미' 때문에 형성되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일정한 행동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떤 농구 선수가 자유투를 던지기 전에 공을 꼭 다섯 번 튕기는 행위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비교적 무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어떤 공간에 의식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관련해서 경험했던 무언가가 나의 무의식 속에 그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한 가지 예가 침대라는 공간이다. 잠에 쉽게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는 여러 가지 조언이 있는데,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조언 중 하나가 바로 침대에서는 자는 것 이외의 다른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침대에서 책을 읽는 등의 다른 활동을 하면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이 안 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침대에서 읽지 말고 침대를 벗어나서 읽으라고 조언한다. 아마도 침대에서 하는 다른 활동들이 침대라는 공간에 연결되는 수면이라는 의미를 약화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재택근무를 하면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에 집중하는 정도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에 비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는 일을 해야겠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데, 집이라는 공간은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집에서는 일에 집중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거점 오피스 같은 형태가 더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집에서도 빠르게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종의 '루틴'을 형성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형태 중 하나가 '공포증'으로 나타난다. 고소 공포증은 높은 곳에 있을 때 무서움을 느끼는 것이고, 폐소 공포증은 닫힌 공간에 있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높은 장소나 닫힌 공간이 당사자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의 무의식 속에 형성된 어떤 의미가 그 장소와 연결되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다. 침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장소에서 어떤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공포증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의 이동'이다. 유명한 장소를 보는 재미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장소가 주는 묘한 해방감도 여행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포함되어 살아가는 모든 공간은 이미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형성해 놓고 있다. 그런데, 여행을 가면 아직 그런 의미가 형성되지 않은 공간에 놓이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무의식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은 진정한 환기를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다. 그리고 공간은 환경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면 먼저 공간에 변화를 주면 어떨까 한다. 더불어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좋은 경험을 많이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다. 유명한 여행지에서의 체험보다 매일 만나는 집, 동네, 학교에서의 좋은 경험이, 아이들의 무의식 속에 좋은 의미를 견고하게 형성해 줄 것이고, 그것이 무엇보다 아이들의 인생에 큰 힘이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