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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자

by 취한하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간혹 반장 후보로 추천을 받더라도 늘 고사했다. 그래서, 반장은 커녕 부반장도 한 번을 안 했는데, 어쩌다 보니 재수생 시절에 학원에서 반장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원은 총 36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반마다 100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36개 반 중 유일하게 남자만으로 100명이 채워진 반의 반장을 맡은 것이다.


재수 학원의 반장이라고 해봐야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수업 시간에 인사하는 것과 가끔 교무실에 다녀오는 것만 하면 됐다. 하지만, 나로서는 무척 새로운 경험을 하나 하게 되었는데, 바로 '연결의 경험'이었다. 반의 구성원이 100명이나 되다 보니, 학생들은 대체로 소그룹 단위로 어울렸다. 서로 어울리는 그룹이 다르면, 같은 반이라고 해도 그다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달랐다. 나는 나머지 99명과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반장이라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그런 연결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되고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리더 생활을 하면서 맡았던 팀의 구성원은 많아도 30명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10명만 넘어가도 그 안에는 늘 '경계선'이 존재했다. 어떤 경우에는 경계선이 여러 개 존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모두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리더였다. 그래서 가끔은 '경계선을 넘나드는 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구성원들 간에 좋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 리더의 본질적인 역할에 포함되는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팀워크란 친목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리고,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현장에서는 '관계'가 늘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리더는 '관계'를 조율하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리더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있다. 의사결정과 동기부여만 해도 리더가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고, 시간을 많이 투여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조금 여유가 있다면 구성원들의 '관계'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모두가 좋은 관계일 수는 없지만,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게다가, '관계'가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더라도, 때로는 성공을 가로막는 강력한 장애물이 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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