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한하늘 Jan 27. 2023

[Book] 이상을 향한 몸부림,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는 서머싯 몸이 1919년에 출간한 책이다. 현실에서 퍽 안정적인 삶을 살던 주인공이 현실을 벗어나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의 '달'과 '6펜스'는 모두 은색 동그라미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전자는 이상향을 나타내고 후자는 현실을 나타낸다. 혹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과 인간을 옭아매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재밌게도 소설 안에서는 달에 대한 묘사도 6펜스에 대한 기술도 나타나지 않는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증권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성실한 40대의 남자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본인은 꽤 오래 생각한 것이겠지만) 가정과 직장을 모두 내팽개치고 화가의 길을 걷는다. 바로 이 부분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부분은 불편한 생각이 든다. 인간이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은 일견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올바른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관계를 갖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관계를 형성했다면 그것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만, 스트릭랜드의 모델이 된 유명한 화가 '고갱'의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증권회사의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고갱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대 심리로 일부러 스트릭랜드가 가정을 버리는 설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릭랜드가 화가일 때 보여주는 성품과 증권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에 보여주는 성품은 완전히 다르다. 신사적이고 점잖던 스트릭랜드가, 화가가 되고 나서는 지독히도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변모해 있다. 그만큼 본성이 오랫동안 강하게 억눌러져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고, 자신의 그런 과거를 지독히도 부정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소설에 다소 불편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트릭랜드에 열광했던 것은, 억눌림에 대한 반항심과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고 싶은 욕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똑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에는 스트릭랜드와 비슷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바로 스트로브 부인이다. 스트로브 부인은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는 아니었다. 부인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남편의 도움을 받았고, 그것이 결혼으로 이어져 있었다. 짐짓 사랑인 척했지만, 그 안에는 진짜 사랑은 없었다. 그러다 스트릭랜드를 알게 됐고, 그를 사랑하게 됐으며, 결국 가정을 버리고 스트릭랜드에게 갔다.


스트로브 부인의 구애를, 스트릭랜드를 옭아매려는 현실의 도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라면 일부러 복잡한 설정을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그보다는 스트릭랜드와 비슷한 선택을 했지만 다른 결과를 맞이하는 대조군으로써 스트로브 부인이 필요했던 것 같다.


스트릭랜드와 비슷한 선택을 했지만, 스트로브 부인은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그것이 단지 그녀가 추구한 것이 세속적인 것이어서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각자 다르고, 세속적인 것이라고 해서 고귀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스트릭랜드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다다를 수 있는 이상을 추구한 반면, 스트로브 부인은 타인의 의지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는 것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타인의 의지가 자신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된다. 서머싯 몸이 스트로브 부인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관철될 수 있는 이상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상에 도달하고자 했지만, 결국 스트릭랜드도 달에 도착하지는 못한 것 같다. 천재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토록 무시했던 세속의 평가일 뿐이다. 그가 이상에 도달했는지 여부는 오직 스스로의 평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역작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한 것을 보면, 스트릭랜드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세속의 평가를 받기 싫어서 불태웠을 수도 있지만, 그가 세속에 대해 보여준 태도는 '경멸'보다는 '무시'에 가깝기 때문에 세속 때문에 작품을 불태운다는 것은 스트릭랜드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오직 자신만 생각하면서 몸부림쳤는 데도, 결국 그는 가고 싶은 곳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처음부터 도달이 불가능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불가능한 이상을 향해 처절히 몸부림치는 모습이 우리가 흔히 응원하고 박수 치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똑같은 욕망에 대한 응원과 박수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Movie] 인간이란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