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생각해 보면 평범한 시구다. 우리 식으로 하면, '청담대교 아래 한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시구가 왜 그렇게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걸까? 아마 그것이 '센 강'이고, '파리'를 연상시켜서가 아닐까?
센 강은 프랑스 중부에서 시작하여 대서양까지 이르는 강이다. 파리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파리를 위아래로 나누는데, 그 폭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넓은 곳이 200m 정도라고 하는데, 한 강의 폭이 1km 정도니까 한강의 1/5 정도 되는 크기다. 실제로 센 강에 있는 다리를 건너보면 반대편으로 금방 넘어가게 된다. 그 덕분에 강의 이쪽저쪽으로 걸어서 다니기가 수월하다.
센 강에는 유명한 다리가 많이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아폴리네르의 시로 유명한 '미라보 다리'인데, 막상 세 번이나 파리를 방문했으면서도 미라보 다리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다. 어딘가 해서 지도에서 찾아보니, 여행자들이 많이 다닐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시뉴 섬'을 산책한 적이 있으니, 시뉴 섬의 끝에서 미라보 다리를 보기는 했을 것 같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다리는 영화로 유명한 '퐁 네프'다. 간혹 '퐁 네프 다리'로 소개되어 있는 글이 있는데, '퐁'이 다리라는 뜻이므로 '퐁 네프'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다리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르아켐 다리'는 비교적 최근에 유명해진 다리다. 2층으로 된 구조를 가지고 있고, 1층에는 차와 사람이, 2층에는 열차가 다닌다. 이 다리는 영화 '인셉션' 덕분에 유명해져서 '인셉션 다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단순히 영화에 나왔다고 유명해진 것은 아니고 실제로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라서 유명해졌다. 종심을 향해 일정한 간격의 기둥이 늘어서 있는 구조라서 사진 스폿으로 매우 좋으며, 웨딩 촬영을 많이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여행자들에게 익숙한 '예술의 다리'가 있다. 프랑스어로는 '퐁 데 자르'라고 한다. 이 다리는 양쪽 난간에 자물쇠가 무수히 달려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날씨 좋은 날 멀리서 보면 금박을 입혀 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말 빼곡히 달려 있었다. 하지만, 자물쇠가 너무 많이 달려 다리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림판이 자물쇠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물쇠를 전부폐기한 것은 아니고, 강변의 안전한 곳에 옮겨 놓았다.
강 한가운데로는 유람선이 지나다닌다. 폭이 넓은 강이 아닌데도, 여러 브랜드의 유람선이 센 강을 왔다 갔다 한다. 유람선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강변을 걸어 다니며 보는 풍경과 유람선에서 보는 풍경이 조금 달라 보이기는 한다. 그래서, 파리에 여행을 갔으면 유람선을 한 번쯤은 타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단체 관광객이 많이 들리는 코스이기 때문에, 단체 관광객이 몰리는 시간대는 피해야 한다. 한 번 단체 관광객과 겹쳐서 유람선을 탄 적이 있는데, 대기 시간이 굉장히 힘들었다.
센 강의 도로변으로는 노점상들이 있다. 강변에 고정된 설치물이 있고, 그 설치물마다 노점상이 하나씩 있는데, 책이나 포스터 같은 것을 많이 팔고, 그 외에 잡다한 물건들도 팔고 있다. 노점상이라고는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귀찮게 굴지도 않고, 길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풍경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여행자들에게는 파리의 고유한 풍경 중 하나로 인식된다. 그런데 2024년 파리 올림픽 기간 동안 '보안상의 이유'로 일시 철거한다고 하니,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에펠탑 부근에서부터 강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반대편 끝 쪽에 있는 시떼 섬을 만난다. 시떼 섬은 한강의 여의도처럼 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데, 그곳에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노트르담'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것으로, 프랑스에는 수많은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것은 '노트르담 드 파리(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노트르담이 건축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겠지만, 노트르담 성당이 파리 시민이나 여행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성당 근처에 가면 그런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나도 노트르담 성당이나 그 뒤편 작은 공원에 몇 번 갔는데,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느껴지기보다는 편안함과 위안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성당에 2019년에 큰 화재가 나서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도 2024년에는 다시 개장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하니 다행이다.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에는 유명한 '포앵 제로'가 있다. 영어로는 point zero인데, 파리에서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라고 한다. 이 지점이 유명한 것은, '포앵 제로를 밟으면 파리에 다시 오게 된다'는 미신 때문이다. 미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파리에 갈 때마다 포앵 제로를 밟았고, 마지막으로 밟은 것 빼고는 결국 매번 파리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미신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것 치고는 포앵 제로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표지판 같은 것이 따로 있지 않고, 그냥 땅바닥에 표시가 하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포앵 제로를 찾으려면,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특히, 자기 발을 찍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가 포앵 제로일 가능성이 높다.
저녁이 되면 센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풍경이 건물이 만들어 내는 풍경에 못지않게 보기 좋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만, 한 번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서 왁자지껄하게 노는 것을 봤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고, 아마 금요일 저녁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다면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사실, 금요일 저녁에 강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풍경은 대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센 강의 풍경은 다른 도시에서 봤던 풍경과 조금 달라 보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 봤던 풍경을 실제로 보는 느낌이랄까.
파리에는 유명한 곳들이 강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강 폭이 넓지 않아서 도보로 다리를 건너는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파리 여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센 강을 여러 번 보게 되고, 여러 번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센 강에 정이 들게 된다. 멋지고 화려한 유명인이 아니라, 매일매일 보는 친구 같은 존재가 센 강이 아닌가 싶다. 유명인은 보이지 않으면 관심에서 사라질 뿐이지만, 친구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고 보고 싶어 진다. 내게는 센 강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