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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an 12. 2024

페이커를 보며

롤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 행사다. 전 세계의 팀이 모여 우승을 가리는 대회로 매년 열리는데, 올해는 한국에서 개최가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T1이라는 팀이 우승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다. T1은 가장 인기 있는 팀이지만, 롤드컵 우승은 7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페이커(본명 이상혁)라는 선수가 있었다.


페이커는 열한 번의 시즌 중 롤드컵 결승에 여섯 번 진출했다. 그중 네 번은 이겨서 우승을 하고, 두 번은 져서 준우승을 했다. 그런데, 그 두 번의 준우승에서 페이커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2017년의 결승에서 페이커의 팀은 상대방에게 완패했고, 페이커는 패배가 확정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당시의 SKT는 컨디션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페이커의 힘으로 결승까지 간 것이고, 그래서 준우승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할 만했다. 하지만, 페이커는 결승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5년이 지난 2022년에, T1(SKT에서 이름이 달라졌다)은 결승에서 또 패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2017년과 양상이 달랐다. 이번에는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팀이 결승 상대였다. 거의 대부분 T1이 쉽게 우승을 거머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접전 끝에 우승은 다른 팀의 것이 되었다. 당연히 T1 선수들은 큰 충격과 좌절감에 휩싸였다. 2017년보다 2022년이 더 울분이 차오를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게임을 지고 난 직후에 페이커는 좌우를 먼저 돌아보았다. 우승이 좌절된 순간에 동생들 걱정을 먼저 한 것이다. 페이커 자신은 큰 동요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페이커가 팀의 리더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023년에도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T1은 젠지와 더불어 리그에서 2강을 형성하는 팀이었다. 그런데, 리그 중간에 페이커가 부상을 당했다. 페이커를 대신하여 2군 선수가 1군에 올라와 경기를 치렀는데, 당시 T1은 8번의 경기 중 7번을 패배했다. 2군 선수가 1명 포함되었다고 해도, 나머지 선수들이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기 때문에 1승 7패의 성적은 T1 답지 않은 성적이었다. 실제로, 7패를 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이 썩 좋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루어진 인터뷰를 보면, 당시에 팀워크 자체가 크게 흔들렸던 것 같다. 이후 페이커가 돌아오자 T1은 경기력을 회복했고, 리그 준우승, 롤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사람들은 '지표'를 좋아한다. 지표는 성과와 기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누군가를 평가할 때 지표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조직은 눈에 보이는 지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표가 좋은 사람들만 대충 모아놓으면 팀의 성과가 오히려 하락하기도 한다. 팀이 좋은 역량을 가지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무형의 가치들이 필요하다. 그런 가치를 잘 알아보고 구성하는 리더가 좋은 팀을 만드는 리더다. 그런 가치를 평가하고 구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손쉬운 '지표'에 의존하는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팀은 선수가 자주 바뀐다. 작년에 롤드컵 우승을 거머쥔 팀도 선수 변동이 크게 있었고, 올해는 롤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이미 몇 년을 같이 한 T1의 구성원들이 다음 시즌에도 같이 하기로 한 것 역시 팀을 묶어주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T1 선수들에게는 T1이 하나의 공동체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그것은 좋은 성적이 아니라 좋은 팀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T1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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