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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Feb 19. 2024

나를 기획하자

게임을 만들 때 '제안서' 같은 것을 작성한다. 프로젝트의 진행을 회사로부터 승인받기 위해 만들기도 하고,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얻어내기 위해 만들기도 한다. 제안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이 게임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적으로 가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를 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은 게임이나 사업 아이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가치를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 것은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게임 제안서에 적는 내용들을 이용해 '나'를 기획해 보면 어떨까 한다.


시장


게임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시장이다. 사람들이 어떤 게임을 원하는지, 시장이 계속 유지되거나 혹은 성장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좋다.


개인에게도 시장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머라면 프로그래머를 계속 필요로 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 지금은 프로그래머가 많이 필요하지만 점차 그 수요가 줄어드는 것 같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혹은, 프로그래머도 여러 가지 프로그래머가 있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래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기업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적극적이라면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그래머나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경쟁


생각하고 있는 게임과 비슷한 게임이 시장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게임이 새로 등장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경쟁이 치열해도,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이 계속 바뀌고 있다면 경쟁에 뛰어들만하다. 반면, 새로 나오는 게임은 많지만 기존의 성공작들이 오랜 기간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개인도 하는 일에 따라 다양한 경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진입 장벽이 낮은 일은 경쟁자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진입 장벽이 높은 직업은 경쟁이 덜 치열할 수 있다. 게임 아트에는 여러 가지 작업이 존재하는데, 그림을 그리거나 3D 모델을 만드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반면, 연출을 잘하는 사람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게임 기획도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은 많지만, 경제 밸런스를 잘 잡아내는 기획자는 많지 않다.


제품


제안서에는 당연히 프로젝트에서 만들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고,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조작하여 무엇을 달성하면 되는 게임인지 설명해야 한다. 게임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어떤 게임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개인도 자신이 하려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어떤 영역의 프로그래머가 될 것이며, 어떤 도구들을 사용할 것인지, 어떤 사업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은지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제품 사용 설명서처럼 자신에 대한 설명서를 쓴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전략


제품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수요에 맞는 제품을 출시한다고 해서 무조건 팔리는 것이 아니다. 수요에 맞는 여러 제품 중에서, 고객이 우리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확실히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높은 품질일 수도 있고, 참신한 콘셉트일 수도 있다. 결국, 하나의 확실한 '마케팅 문구'를 작성할 수 있는 요소가 제품 자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업에서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일자리마다 보상의 크기도 다르다. 따라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높은 보상을 얻고 싶다면, 거기에 걸맞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잘하는 것, 더 가치 있는 것을 보유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게임 캐릭터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림의 품질이 월등하거나, 그림의 콘셉트가 독보적이거나,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남들보다 훨씬 빠르거나 하는 분명한 이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역량


제품이 좋아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품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역량이 있는지도 같이 살핀다. 제품에 대한 계획은 좋지만, 제작 조직의 인적 구성에 의혹이 있으면 투자도 하지 않고, 회사도 프로젝트의 진행을 승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안서에서는 구성원들의 역량에 대해서도 잘 어필하려고 애쓴다.


좋은 전략을 가지고 가치 있는 커리어를 쌓아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 길이 자신과 잘 맞는 길인지도 살펴야 한다. 경제 밸런스를 잘 잡는 기획자가 되겠다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겠다면, 다량의 커뮤니케이션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내가 가려고 하는 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내가 성취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비용과 성과


게임 제안서의 뒷부분에는 비용과 성과에 대한 내용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며,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나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어쩌면 앞의 모든 내용이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개인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비용과 성과를 따져보는 것이 좋다. 내가 목표로 하는 위치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체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커리어 중간중간 자신이 제대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지 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기획하자


체계적인 계획이 없어도 감각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커리어를 쌓아나갈 때도 그냥 그때그때의 생각으로 충분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용이 별로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감각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커리어를 잘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대표적으로 내가 그렇다)에게는 이런 프레임워크가 생각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기획하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 고민이 더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된다. 시장이나 경쟁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나만의 가치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다. 혹은 과거와 상황이 달라져서 기획 내용을 다시 수정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운영해 나가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summary>

시장 - 내가 하려는 일이 계속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 보자.

경쟁 -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경쟁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고민해 보자.

제품 - 내가 하려는 일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보자.

전략 -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특별히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 있을지 생각해 보자.

역량 - 내가 가려는 길에서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내가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인지 따져 보자.

비용과 성과 -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가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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