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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Jan 26. 2024

[Book] '민족주의, 역사를 쓰다'

슈테판 베르거, 에릭 스톰 공동편집

내가 '민족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최초의 사건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었다. '유고슬라비아'라는 하나의 나라가 전쟁을 통해 여러 나라로 갈라진 사건이었는데, 그 안에는 민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인류가 계속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전해 들으면서 인류가 생각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민족'은 매우 익숙한 단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라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는다. 그리고, 사회화되어 가면서 점차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형성한다. '민족의식'을 자극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흥행에 유리하고, 심지어 배달 업체까지도 '민족'을 거론할 정도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민족'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고,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민족주의, 역사를 쓰다'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다. 주로 유럽의 입장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를 정리하고 있는데, 그 시각 자체가 우리하고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 유럽의 국경선 자체가 근대 이전까지 계속 변화해 왔고, 많은 국가가 근대에 이르러 성립된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민족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엘리트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것인지, 오래전부터 존재했는지 아니면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인지 등 아직까지도 쉽게 정리되지 못하고 많은 논의가 이어지는 것 같다.


우리와는 입장이 달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현대는 모든 국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글로벌' 시대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했던 유럽에서도, 민족주의는 사그라들기는커녕 그 존재감을 계속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족주의, 역사를 쓰다'는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다. 책 앞에도 '슈테판 베르거, 에릭 스톰 공동편집'이라고 쓰여 있다. 책이 총 12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챕터가 각각 서로 다른 사람의 저술이다. 그중 첫 번째 챕터를 제외하면, 나머지 11개의 챕터는 민족과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11개의 시각을 담고 있다. 결국, '민족주의, 역사를 쓰다'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그동안의 논의를 개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 덕분에, 책이 갖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시각 혹은 이론을 책 하나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이 책 하나만으로도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충분히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반면 그것이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그만큼 정보가 많이 들어 있고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한 번에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한 번 가볍게 읽고, 두 번째에 조금 더 이해하려고 하는 식으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11개의 시각 중 흥미가 가는 것만 잘 이해해도 충분하다. 잘 읽히는 것 두세 가지, 아니면 영존주의와 근대주의처럼 대비가 되는 부분만 잘 이해해도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통찰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유럽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의 내용을 알면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용이 쉽지는 않아서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권장하기가 애매한데, 그래도 역사와 사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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