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공범이 각각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데, 둘 다 범행을 부인하면 징역 1년씩을 살아야 하고, 둘 다 범행을 자백하면 징역 3년씩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한 명은 범행을 부인하고 한 명은 자백하면, 부인한 범인은 징역 5년을 살고, 자백한 범인은 협조의 대가로 무죄가 된다.
범인 A는 범인 B가 자백을 할지 부인을 할지 모른다. 만약 범인 B가 자백을 하면 범인 A도 자백을 하는 것이 좋다. 부인을 하면 징역 5년, 자백을 하면 징역 3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인 B가 부인을 할 때도 범인 A는 자백을 하는 것이 좋다. 같이 부인하면 징역 1년을 살아야 하고, 자백을 하면 무죄로 풀려나기 때문이다. 결국 범인 A는 무조건 자백하는 것이 최선이고, 이것은 범인 B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둘 다 자백을 하고 각각 징역 3년씩을 살게 된다.
이것은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다. 두 공범이 모두 범행을 부인하면 징역 1년씩만 살고 나올 수 있는데, 각자 자신에게 최선인 선택을 하다 보니 징역 3년씩 사는 결과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이론상의 숫자놀음이 아니다. 현실에서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각 기업이 경쟁적으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나, 각 국가들이 군비 경쟁을 벌이는 것도 '죄수의 딜레마'의 한 형태이다.
'죄수의 딜레마'의 바탕이 되는 것은 '신뢰의 부족'이다. 두 공범은 함께 범행을 부인하면 각각 징역 1년씩 살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최선인 것을 찾는 것이다. 만약, 다른 방에 있는 공범이 범행을 부인할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있다면, 두 공범은 범행을 부인하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가 말하는 것은 결국, '신뢰는 이익이 된다'라는 것이다. 그것이 '미덕'이라서가 아니라, 공동체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가 돈이 되냐, 밥이 되냐' 같은 표현이 있는데, 신뢰는 돈이 되기도 하고 밥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