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중에 유독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어떻게든 충족시키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어른, 특히 부모에게 많은 질문을 한다. 하늘은 왜 파란색인지, 입에서 나오는 바람이 왜 어떤 때는 차갑고 어떤 때는 따듯한지, 사람의 손가락은 왜 다섯 개인지 등을 쉴 새 없이 물어온다. 어찌나 질문이 많은지, 인내심 많은 어른도 종종 짜증을 낼 정도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도 대체로 어른이 되면서 질문이 줄어든다. 세상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 궁금한 것도 많아져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오히려 호기심이 감소한다. 그리고, 소위 ‘당연한 것’이 많아진다. 왜 그런지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그렇다고 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면서 점점 ‘평범함’에 가까워진다.
평균에 수렴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면, 평범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커리어에 있어 탁월함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평범함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당연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왜?’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현상을 관찰한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 여러 사회 현상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볼 때마다, ‘왜’ 그런 현상들이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자. 마블의 최근 영화들은 왜 흥행에 실패할까? 달리기나 필라테스를 하는 사람들은 왜 그 운동을 선택했을까? 직장인들이 번아웃을 겪는 시기가 왜 빨라졌을까?
‘왜?’를 생각하면 본질에 접근하게 된다. 영화를 흥행시키는 본질, 운동을 선택하는 본질, 번아웃을 발생시키는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본질을 이해하면 더 많은 사회 현상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현상들에 대해 더 잘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은 왜 프로그래머의 일자리를 위협할까? 프로그래밍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자. 프로그래밍이란, 인간의 언어를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프로그래머의 작업이 불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로그래머는 번역가, 통역가와 본질적으로 같은 선상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기존의 코드를 흉내 내고 있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면(사람보다 기획서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python, c++ 같은 중개 언어 자체가 필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혹은 인공지능을 위한 새로운 중개 언어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인간이 자연어로 주문을 하면 바로 프로그램이 생성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람, 혹은 인간관계이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바탕은 바로 ‘이해’에 있다. 이해에는 얕은 이해와 깊은 이해가 있는데, 어떤 사람과 어떤 행동을 연관 짓는 것이 ‘얕은 이해’이고, 그 사람이 왜 그 행동을 하는지까지 이해하는 것이 ‘깊은 이해’이다. 예를 들어, 어떤 팀원이 자주 지각을 한다는 것만 아는 것은 ‘얕은 이해’가 되고, 그 사람이 왜 자주 지각을 하는지 아는 것이 ‘깊은 이해’가 된다.
‘깊은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얕은 이해’에는 왜곡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인성, 태도, 가치관 등을 평가한다. 그런데, ‘얕은 이해’만 가지고 있으면, 이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각에 대한 얕은 이해만 가지고 있으면, 그 팀원을 게으른 사람,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으로 단정하기 쉬워진다. 반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이 게으른 사람인지, 아니면 지각을 피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사람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좋은 관계를 맺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람을 쉽게 단정하는 것은 모두가 경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쉽게 빠지게 되는 함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언제나 ‘왜?’를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보도록 하자.
사람에게 감정은 무척 소중하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는 감정들이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간혹 이 감정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직장생활에서는 종종 갈등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감정은 무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모호하거나, 심지어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소위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때는, ‘왜’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출근길에 있었던 불쾌한 사건 때문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서 외부 자극에 더 예민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바로 지금, 평소라면 웃고 넘어갔을 일에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한 마디 한다면, 동료와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여유를 갖고, 지금 왜 그런 감정과 충동이 일어나는지 살펴본다면, 많은 경우 필요 없는 감정싸움을 피할 수 있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 만큼, 감정적인 충돌은 앙금이 남기도 쉽다. 따라서, 불필요한 감정 충돌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은데, 자신에게 발생하는 감정에 ‘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왜?’를 던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왜?’를 생각하면, 더 많은 정보를 찾게 되고, 그만큼 지식의 범위가 넓어진다. 특히 신입의 경우,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에만 몰입하면 배움의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다. 신입에게 주어지는 일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를 생각하면, 그 일의 주변까지 학습하게 되고, 점차 일의 핵심적인 부분까지 접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신입 프로그래머에게 단순한 UI 구현 작업이 주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자신에게 주어진 작업에만 몰입하면, 그 프로그래머는 팝업, 버튼, 스크롤을 구현하는 지식만 습득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왜 팝업이 3초 뒤에 자동으로 사라져야 하지?’, ‘왜 버튼에 글자 대신 그림으로 표현했지?’ 같은 것을 생각하면, UX 개념이나 다국어 적용 같은 쪽으로 지식이 확장되게 된다.
게다가 ‘왜?’를 생각하면, 습관처럼 하던 작업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해 볼 수 있게 된다. ‘왜 디펜스 게임은 방어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 디펜스 게임에 공격적 요소를 넣는 실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나 시도는 조직이 신입에게 종종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하는 작업에도 ‘왜?’를 던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를 생각한다고 해서 언제나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도무지 모를 수도 있다. 상관없다. 어차피 세상에 모든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왜?’를 던지기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식과 통찰을 놓치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인과관계를 속단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왜?’가 가져다주는 효용은 충분히 크다. 따라서, 어지간한 일에는 습관처럼 ‘왜?’를 던져보자. 웬만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1. 현상에 대한 '왜?'
현상에 '왜?'를 던지면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본질을 이해하면 더 많은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2. 행동에 대한 '왜?'
행동에 '왜?'를 던지면 '깊은 이해'로 이끌어 준다.
'깊은 이해'는 좋은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되고, 사람을 속단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3. 감정에 대한 '왜?'
감정은 때때로 잘못된 대상을 향할 수 있다.
내 감정의 원인을 살핌으로써, 불필요한 감정 충돌을 피할 수 있다.
4. 작업에 대한 '왜?'
'왜?'를 생각함으로써, 작업의 주변으로 지식과 통찰을 확장할 수 있다.
습관처럼 하던 작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해 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