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펙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 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심리학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정신 분석에 대한 책을 읽은 적도 있다. 이 책 <거짓의 사람들> 역시 사람의 마음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다른 책과는 다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바로 ‘악’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다. 하지만, ‘악’의 본질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행동의 결과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로 나누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의지나 의도의 차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거짓의 사람들>은 ‘악’을 ‘의지’의 차원에서 보기는 하지만, 이성적인 측면보다는 무의식적인 측면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의 심리 상담을 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악한 의지를 종종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 의지가 그들의 이성보다는 무의식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악한 의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연구의 중간 보고서가 바로 <거짓의 사람들>이다.
무의식은 일종의 ‘장치’다. 어떻게 동작하는지 명확하게 관찰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 가진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은 분명하다. 무의식에는 ‘목적’이 존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수단을 만들어 둔다. 가장 대표적인 무의식은 바로 ‘자기 방어’의 무의식인데, 사람마다 ‘자기 방어’의 수단은 다양하다. 저자는 ‘악’도 이러한 자기 방어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 자신을 방어하면서 다른 사람의 사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을 때, 무의식에 ‘악’이 형성된다고 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악’에 대한 이러한 접근이 흥미로웠다. 나는 선과 악을 대체로 ‘선택’의 문제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 ‘악’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가 새롭고 재밌었다. 물론, 저자는 그것을 영적인 측면(특히 기독교적 측면)과 연결하고 있고, 유물론자인 내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영적인 측면을 배제하고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저자가 기독교적 사고를 바탕에 두고 있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엄격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불완전함’조차도 ‘죄’로 설정하는 부분이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이런 부분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데, 저자가 기독교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적절히 감안하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뫼르소’가 떠올랐다. 바로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이다. 뫼르소는 사람을 죽인 ‘죄’를 저질렀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심지어 사형이라는 형벌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물론, 뫼르소는 <거짓의 사람들>에 나오는 악인들과는 조금 다르다. 자신을 방어하려 하지 않고, 그래서 거짓을 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거짓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악’이라기보다는 ‘무지(無知)’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상당히 대척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이방인>과 <거짓의 사람들>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무척 재밌을 것 같다.
인공지능의 구조는 사람의 뇌 구조를 닮았다. 사람의 뇌와 비슷한 구조를 채용하면서 인공지능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생각하는 방식, 사고가 발전하는 방식도 사람과 비슷한 면이 많다. 만약, ‘악’이 사람의 뇌가 발전한 한 형태라면, 부정적인 경험과 인식이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면, 인공지능에도 ‘악’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제약을 두지 않으면 강한 선입견과 편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 입증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연구 방향에 생각보다 중요한 가치와 필요가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