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대한민국 이전에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들, 특히 38선 아래쪽으로 존재했던 나라들이 있다. 가야,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이 그것이다. 그중 조선과 고려, 신라는 익숙하고, 관련 문화재도 많이 접했다. 그런데, 백제와 가야는 많이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특히 백제는 존속했던 기간도 길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백제의 땅이었는데, 막상 백제 문화재는 많이 찾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로 공주를 선택했다. 물론, 백제 문화재라고 하면 부여가 가장 대표적인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부터 공주가 궁금했다. 어쩌면 박찬호의 고향으로 익숙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공주 여행에서 목적한 장소는 크게 두 곳이 있다. 바로 공산성과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어 실제로 보고 싶었고, 공산성은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 방문하고자 했다.
공산성은 공주가 백제의 수도였던 시기를 대표하는 산성이다. 64년 동안 백제의 왕성 역할을 했다고 한다.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했다. 백제의 왕성으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 인조도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곳으로 잠시 피신했던 것이다.
성의 길이는 총 2,660m에 달한다고 한다. 성곽이 잘 복원되어 있고, 길도 나쁘지 않아 한 바퀴 둘러보기에 좋았다. 전체를 다 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절반 정도만 돌아보았다. 중간중간 벤치도 많아 쉬엄쉬엄 보기에도 좋은 장소다. 게다가 성이 공주 시내에 있고, 매표소 건너편으로 음식점들이 많아 여행 장소로는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가파른 언덕과 강변을 따라 성벽이 있어서 방어하기에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한성을 잃고 도망 온 곳이 공산성이라서, 큰 나라의 중심지라는 감상보다는 도피처 같은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64년 동안 수도 역할을 했는데도 그 흔적이 강렬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백제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왕 무령왕과 왕비를 합장한 무덤이다. 예전에는 왕릉 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입구를 막아 놓았다. 대신 근처에 모형을 만들어 두어, 왕릉 내부를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비록 모형이기는 했지만, 교과서에서 보았던 왕릉 내부를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책에서 봤던 내용으로는 벽돌을 아치형으로 연결한 것이 특별한 점이었던 같은데,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 공간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책에서 사진을 봤을 때는 꽤 큰 공간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관 두 개에 딱 맞을 것 같은 작은 공간이었다.
무령왕릉 외에 6개의 무덤이 더 있다. 총 7개의 무덤이 있는 셈인데, 옛 자료에 의하면 이곳에 17개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발굴이 덜 된 것인지, 소실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왕의 무덤인데도 주변이 무척 소박해 보였다.
무령왕릉 주변으로는 국립공주박물관과 공주한옥마을이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상설 전시관만 관람했는데, 박물관이 아주 크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다리 아프지 않게 한번 둘러볼 만한 정도의 적당한 크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물도 상당히 볼 만했다. 특히 다양한 도자기들과, 왕릉에서 나온 것 같은 목관이 인상적이었다.
공주한옥마을도 크기는 크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있는 한옥마을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 보였다. 하지만 조경이 잘 되어 있어, 좋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무령왕릉, 국립공주박물관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들르기 좋은 곳인 것 같다.
공주 시내에 가면 몇몇 유명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박찬호 선수와 나태주 시인이다. 공주에는 박찬호가 다녔던 학교가 있고 박찬호 길도 있다. 그리고, 나태주 풀꽃 문학관과 나태주 골목길도 있다. 박찬호가 다녔던 중학교를 지날 때, 휴일이었는데도 마침 야구부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중에 또 한 명의 메이저리거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태주 풀꽃 문학관은 시간 관계상 가지 못했는데, 문학관이 아니더라도 돌아다니다 보면 나태주의 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태주의 영향 때문인지, 공주에는 책방도 여럿 있는 것 같다. 그중 한 곳을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방 구경도 하고, 커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공주는 큰 도시가 아니고, 볼 것이 아주 많은 곳도 아니다. 하지만, 하루 정도는 충분히 돌아볼 만한 도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함 속에 깊은 문화적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옛 백제의 흔적 속에서 평화롭게 쉬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며칠 머물러도 좋은 곳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