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로마가 가장 더울 것으로 생각했다. 여행 도시가 로마-피렌체-인터라켄-파리-런던 순인데 점차 북쪽으로 올라가는 동선이다. 게다가 8월 말에 시작해서 점차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라서 로마에서만 더위를 견뎌내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피렌체가 로마보다 더 더웠던 것이다. 알고 보니, 피렌체는 분지 지형이어서 상당히 더운 지역에 속했다. 우리나라의 대구와 비슷한 지형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돌아다니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피렌체는 로마에 비하면 작은 느낌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를 걸어서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둘러볼 만한 장소도 정해져 있어서,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오래 머물면서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어쨌든 다른 도시에 비해 일정이 많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이었다. 우피치와 아카데미아를 놓고 고민했는데, 아들이 미술품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유명한 다비드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게다가 숙소에서 가까워서 동선상으로도 이점이 있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원래 예술 학교(아카데미)였던 것을 미술관으로 바꾼 것이다. 14~16세기 피렌체 파 화가의 작품이 많이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니케의 상 정도 크기를 상상했는데, 실제로 보니 상당히 큰 조각상이었다. 원래 베키오 궁전에 있던 것을 19세기에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당시에 이런 큰 조각상을 옮기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다비드상과 관련해 재밌는 일이 하나 있었다. 여행 중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링크드인이 다비드상의 사진이 포함된 포스트를 내 일촌들에게도 전파하지 않은 것이다. 포스트가 등록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피드에 노출되지 않게 막은 것이다. 심지어, 당시 올린 다비드상은 상반신만 찍은 사진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미국에서 다비드상의 사진을 학교 수업 시간에 활용했다가 문제가 되었다는 일도 있는 것을 보니, 다비드상의 사진 자체가 알고리즘의 검열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상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니, 알고리즘의 개입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유명한 예술품도 그 대상이 되는 것 같아 재밌었다.
피렌체 대성당은 여행 중에 가장 오래 줄을 서서 들어간 장소였다. 피렌체의 유명한 랜드 마크 중 하나인데, 입장하는 데만 30분 넘게 소요되었던 것 같다.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14~15세기 정도에 건축된 성당으로, 상단의 ‘돔’을 건축하는 데만 16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성당을 방문하는 큰 목적은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에 있을 것 같다. 대성당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피렌체를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올라가지 않았다. 4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갈 만큼 전망에 흥미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키오 다리는 1345년에 건설된 다리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강은 ‘아르노 강’인데, 이 강의 폭이 가장 좁은 곳에 건설되었다. 원래는 푸줏간이 많았는데, 가까운 궁전에 살던 페르디난도 1세가 냄새를 견디지 못해, 기존 상점들을 철거하고 보석상이 들어서게 했다고 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낭만적인 장소로도 유명하다.
피티 궁전은 원래 피티 가문의 궁전이었다. 피티 가문은 메디치 가문과 라이벌 관계였는데, 메디치 가문에 지기 싫어서 궁전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티 가문이 몰락하면서 오히려 경쟁 가문인 메디치 가가 이 궁전을 구매하여 별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래도 이름을 계속 피티 궁전으로 했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궁전의 규모가 작지 않아서 관람하는데 시간이 꽤 소요된다. 특히 미술품이 많아서,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 나폴레옹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는데, 나폴레옹이 이용했다는 욕실이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나중에는 행정의 중심이 되었다고 하니, 피렌체에서는 꽤 중요한 건축물인 셈이다.
피렌체를 돌아다닌 날에 점심은 맥도널드에서 먹고, 저녁은 한식을 먹었다. 아들과 나는 그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보다는 입에 맞는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햄버거와 한식을 자주 이용했다.
맥도널드는 아카데미아 미술관 근처 지점을 이용했는데, 화장실 바깥쪽 자동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떤 여자가 곤란해하던 장면이나, 아이가 큰 소리로 울어 쩔쩔매던 어떤 아저씨의 모습이 기억난다. 한식은 ‘한라산’이라는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사진을 보면 한국에 있는 식당과 전혀 다를 바 없는데, 맛도 한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였다. 이때만 해도 유럽의 한국 식당 음식은 다 입에 맞을 줄 알았다. 바로 다음 도시에서 그것이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로마, 인터라켄, 파리, 런던은 모두 방문한 적이 있지만, 피렌체는 나도 처음이었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었던 만큼, 지역마다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로마와 베네치아는 건물 색깔만 비슷하고 매우 다른 도시로 느껴졌다. 그런데, 피렌체도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잠깐 둘러봤던 이탈리아 남부도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탈리아만 오랜 기간 일주를 해도 상당히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