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풍경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터라켄 일정을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여러 번의 고민 끝에 나름 최적의 일정을 준비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인터라켄에 도착한 이후에 아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피렌체에서도 약간 징조가 있었는데, 인터라켄에 와서는 많이 힘들어했다.
사실 인터라켄에 들어오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원래 밀라노에서 두 번 정도 기차를 타면 인터라켄에 도착하는데, 선로 공사가 진행되어 그 루트를 이용할 수 없었다. 대신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지만, 아들과 나 모두 멀미에 취약한 편이라서 장시간의 버스는 부담이 되었다. 결국, 기차를 네 번 타는 우회 경로를 선택했고, 하루를 다 투자하여 저녁 무렵에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그런데, 인터라켄에 도착한 날에 비가 왔다. 시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캐리어를 끌고 빗속을 걸어 식당으로 이동했다가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다행히 아주 늦지 않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결국 다음 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인터라켄 시내 산책만 하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점심을 먹고, 인터라켄 서역에서 동역까지 천천히 다녀왔다. 중간에 벤치가 있으면 쉬기도 하면서 천천히 둘러봤는데, 계획과 완전히 벗어난 일정이었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예전에 딸과 함께 먼저 유럽 여행을 했다. 그때도 인터라켄에 들렀는데, 알프스 하이킹 코스를 다니느라 막상 인터라켄을 주의 깊게 둘러보지는 못했다.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갔다가 오후 늦게 내려와 저녁을 먹고 숙소로 이동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몸이 안 좋은 김에 하루를 인터라켄 시내에서 보내고 나니, 인터라켄의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알프스 풍경 못지않게 힐링의 느낌을 주었다.
명소를 다닌 것이 아니라서 특별히 설명할 내용은 없다. 어쩌면 사진의 나열만으로 인터라켄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다만, 두 가지 정도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 하나는 어떤 외국인 가족들의 모습이었는데, 아이가 무척 서럽게 울고 있었고,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물가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대강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물가에서 놀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강에 빠뜨린 것이다. 다른 가족까지 동원하여 물가를 열심히 쳐다보았지만, 이미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사주겠다고 하면서 달래는 것 같았지만, 아이는 이후로도 한참을 울었다.
또 하나는 음식에 관한 얘기다. 스위스는 음식 맛이 좋지 않은 편이다. 지난번에 딸과 함께 방문했을 때도, 유명하다는 피잣집에서 피자를 먹다가 반을 남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식당을 찾았다. 한국 음식이라면 보통 이상은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매우 비싼 가격에 비해 맛이 좋지 않았다. 가성비 문제가 아니라 찌개의 맛 자체가 별로였다. 기억에는 너무 짰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한식당도 맛이 없을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인터라켄에서 우리가 먹고 만족한 것은 맥도널드 햄버거와 한국에서 가져간 사발면이었다.
산책 중에 가장 좋았던 시간은 강 건너편 벤치에 앉아 쉬었을 때다. 그 벤치에서 보이는 풍경이 아주 좋았다. 눈앞에 흐르는 강의 풍경도 좋았고, 양 옆으로 보이는 길의 풍경도 좋았다. 지금도 아들과 인터라켄을 이야기하면, 그 벤치에서의 풍경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여행을 가면 유명한 곳을 바쁘게 돌아다닌다. 하지만, 가끔은 마치 그곳 주민인 것처럼 시간을 보내 보는 것도 좋다. 예전에 파리에서 그렇게 지내본 적이 있었는데 참 좋았다. 이번 인터라켄에서의 이 시간도 마찬가지로 좋았다. 만약 은퇴하고 여행을 다닐 여유가 된다면, 이런 종류의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