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걷는 파리 중심지

by 취한하늘

파리에서도 아들은 여전히 컨디션이 안 좋았다. 파리는 구경할 것이 많아서 일정을 길게 잡았는데, 하루는 그냥 숙소에서 온전히 쉬었다. 그리고 나머지 날들도 굉장히 여유 있게 돌아다녔다. 그래서, 많은 것을 구경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중요한 에펠탑을 두 번이나 본 것에 만족해야 할까.


파리는 숙박비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중심지에 숙소를 잡기 어려웠다. 결국 약간 외곽 지역에 있는 한인 민박을 이용했는데, 동네도 괜찮았고, 중심지까지 지하철로 이동하기에도 나쁘지 않아 좋은 선택이 되었다. 게다가 아침저녁을 모두 한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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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명물이라고 하면 단연 에펠탑일 것이다. 에펠탑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높이 300미터의 철탑으로 세워졌다. 원래 파리 시민들의 반대가 심했으나 20년 뒤에 철거한다는 약속을 하고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철거할 때가 다가오자, 이번에는 파리 시민들이 철거를 반대했다고 한다. 20년을 함께 지내는 동안 에펠탑이 파리의 명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펠탑은 유명한 건축가 에펠이 설계했다. 원래는 세 명이 공동 특허를 가지고 있는 설계였는데, 에펠이 나머지 두 사람의 권리를 사들인 후 탑 공모전에 응모했다. 설계를 어찌나 치밀하게 했는지, 시속 180km의 바람이 불어도 탑의 꼭대기가 흔들리는 폭은 12cm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지간한 강풍에도 기울어질 염려는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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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에는 에펠탑을 이용해 대서양 너머(아마도 미국)와 처음으로 통신에 성공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텔레비전 안테나를 꼭대기에 설치하여 높이가 324미터로 더 높아졌다. 지금도 여전히 텔레비전 송신탑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에펠탑 설치 직후, 파리 박람회 기간에만 200만 명이 에펠탑을 구경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에펠탑을 방문한 입장객은 총 3억 명이 넘는다.


에펠탑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모파상에 관한 것으로, 에펠탑을 보기 싫어했던 모파상이 매일 에펠탑 1층(우리 식으로는 2층)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그곳에서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일화는 히틀러와 관련된 것이다. 독일이 파리를 점령한 직후에 히틀러가 파리를 방문했는데, 그때 히틀러가 에펠탑에 올라가는 것이 싫어서 엔지니어들이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고장 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히틀러가 에펠탑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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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을 보기 좋은 장소로 샹드마르스 공원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올림픽 때문에 공원에 펜스를 두르고 통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샹드마르스 공원에서 보는 에펠탑의 풍경은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올림픽으로 인한 통제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에펠탑 앞의 차도에 차가 다니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는 차가 지나가야 할 곳에서 사람들이 에펠탑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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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근처에는 개선문이 있다. 파리에는 세 개의 개선문이 있는데, 라데팡스 개선문과 튈르리 개선문, 그리고 가장 유명한 에투알 개선문이 있다.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6년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승리한 뒤 프랑스 군대의 모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을 지시했다고 한다. 다만, 개선문은 1836년에 완공되었는데, 나폴레옹은 1821년에 사망해서 생전에 이 개선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나중에 나폴레옹의 유해를 파리로 옮겨오게 되는데 그 유해가 이 개선문을 지나게 된다.


개선문에는 프랑스 군대의 승리 기록과 지휘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1차 대전이 끝나고 1920년에 세워졌는데, 그 앞에 타고 있는 불은 1년 내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묘에 있는 불이 여기서 가져간 불이라는데, 어떤 이유로 이곳의 불을 가져다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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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에펠탑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루브르 박물관이 아닐까 싶다. 18세기말에 왕실의 미술품을 보관하는 전시관으로 사용하다가, 나폴레옹이 전쟁 중 많은 예술품을 사기도 하고 빼앗아 오기도 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기억에 모나리자가 있는 전시실에서 모나리자 빼고는 모두 약탈해 온 그림이라고 했던 것 같다.


루브르 앞에는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가 있다. 이 피라미드는 1989년에 세워졌다. 유리 피라미드는 낮에 봐도 멋있지만, 밤에 오면 조명 때문에 더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파리를 밤에 돌아다니기는 위험한데, 야경 투어가 있으면 한번 이용해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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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전시물은 40만 점 정도라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늘 주요 작품들 위주로만 구경한다. 예전에 혼자 왔을 때 천천히 다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데, 6시간을 구경하다가 힘들어서 포기했다. 그만큼 넓고 볼 것이 많다. 파리의 청소년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아무 때나 와서 훌륭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파리의 청소년들이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루브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모나리자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모나리자를 봤을 때 큰 감흥은 없었다. 일단 크기가 작은 편이고, 그나마도 멀리 떨어져서 봐야 했다. 차라리 그 맞은편의 ‘가나안의 결혼식’이 더 멋져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모나리자보다 니케 조각상이나 밀러의 비너스상을 더 좋아한다. 그림도 좋지만 입체감이 있는 조각상의 감흥이 참 컸다. 그림 중에서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좋아한다. 그 밖에도 유명한 작품이 참 많으니,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할 때는 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방문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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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를 이동할 때는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만 타고 이동했다. 개인적으로 파리는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그전에는 늘 까르네를 이용했는데, 이제는 까르네가 없어졌다고 한다. 대신 교통카드를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무척 편리했다.


파리에는 소매치기도 많고 집시도 많다. 그래서 짐을 늘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올림픽이 끝나고 패럴림픽이 열리고 있어서 시내에 경찰이 많았는데, 그래도 소매치기 패거리를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아마 루브르 박물관 근처였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갑자기 5, 6명 정도의 젊은 여자 무리들이 지하철에 타더니, 나보고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답할 틈도 없이 계속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순간 짐을 붙들고 여자애들이 내 뒤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자리를 잡았는데, 잠시 후 지하철 문이 닫히려 하자 다시 우르르 내려 사라졌다. 그 직후 어떤 남자가 기관사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한 후 우리 칸에 타서, 경찰인데 혹시 지갑이나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무도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이 없었고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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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에서나 맥도널드를 한두 번은 이용했는데, 파리 숙소 근처에는 맥도널드가 없었다. 대신 KFC가 있어, 파리에 있는 동안 KFC 치킨을 무려 세 번이나 사다 먹었다.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먹고 중간에 KFC 치킨까지 먹었으니, 아픈 것 치고는 꽤 잘 먹고 지낸 셈이다. 그 덕분인지,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동할 때는 둘 다 몸 상태가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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