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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되어야 좋은 것

by 취한하늘

보험에 들어 놓고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지급하면서, 정작 20년 동안 한 번도 보험 청구를 할 일이 없었다면 왠지 그동안 낸 보험료가 아까운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사실 보험 가입 이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에 도달한 것이다. 20년 동안 건강히 지냈으니 말이다. 아마 보험에 들면서도 그것을 쓸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로젝트의 리스크 관리도 보험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리스크 관리에 비용을 들였는데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왠지 리스크 관리에 들인 비용이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프로젝트는 최상의 결과를 만난 것이다. 리스크의 공격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리스크에 대한 재평가는 필요할 것이다.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이 달라졌을 수 있다. 그래도 일단 리스크 관리에 비용을 들인 상태에서는 리스크가 현실화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프로젝트 관련자들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용을 투여하였을 것이다.


리스크 관리는 그것이 효과를 발휘할 일이 발생해야 잘한 게 아니다. 효과를 발휘할 일이 생기지 않아도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부분이다. 투자만으로도 이미 프로젝트와 구성원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하고,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오히려, 리스크 관리 비용이 낭비가 될 것을 우려하여 투자를 주저하는 것이야말로 프로젝트의 가장 큰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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