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보는 삼국지 인물
@ 본문의 인물평은 가벼운 생각으로 적은 것이니, 진지하게 읽지 않기를 권합니다.
삼국지의 대표적인 리더라고 하면 조조, 유비, 손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수많은 제후들이 천하 패권을 노렸지만 결국 위, 촉, 오의 세 나라로 정리되었고, 따라서 조조, 유비, 손권이 먼저 회자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제후들 중에서 가장 패권에 근접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원소가 가장 근접했던 제후였다고 생각한다.
원소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사세삼공의 명문가 출신 자제였다고 하지만, 원소는 ‘얼자’였다. 얼자는 천민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자식이다. 보통 첩의 자식을 ‘서자’라고 하고, 서자들이 집안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자는 서자보다도 서열이 낮다. 그러니까 명문가 출신이기는 하지만, 집안 배경만으로 크게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서의 신분으로 보면 ‘적자’인 원술이 오히려 높다고 볼 수 있다.
원소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집안 배경보다 그의 능력에 기인한 것 같다. 십상시를 해치울 때, 그는 과감한 판단과 신속한 행동을 보였다. 동탁에 대적할 만큼 배포도 컸다. 강력한 공손찬 세력을 궤멸시킬 만큼 군사적인 능력도 있었으며, 유능한 장수와 책사들을 휘하에 두었던 것으로 보아 인망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능력들을 통해 그는 여러 제후 중 가장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관도대전 직전에 원소는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관도대전에서 맞붙은 조조의 세력과 비교하면 몇 배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조뿐만 아니라 어떤 제후도 원소와 대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원소가 왜 관도대전에서 패하고, 천하의 패권에서 멀어지게 된 것일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원소는 자신의 능력으로 큰 성공을 일구어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쉽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이다. 리더가 자신을 믿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조직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원소의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은 두 가지 큰 문제로 이어졌다. 첫 번째는 바로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원소는 ‘대의명분’을 무기로 성장했다. 삼국지 초반에 ‘명분’은 매우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한 왕실’이 허울만 남게 된 이후에는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원소는 ‘명분’에 얽매였고, 그래서 제2의 동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조조에게 빼앗겼다. 전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보인다. 삼국지 초반에는 ‘용맹’이 전투를 크게 좌우했다. 전술이라고 해봐야 도망치는 척하며 적을 유리한 곳으로 유인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점차 ‘지략’이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고, 전략과 전술에 의해 적은 군사로도 승리를 획득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고 있었다. 만약, 원소가 ‘지략’의 중요성을 좀 더 인식했다면, 관도대전의 승자는 조조가 아니라 원소가 되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바로 ‘내가 가장 잘난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원소는 매우 능동적인 사람이었고, 자신의 힘으로 하북(河北)의 패자가 되었다. 작은 조직을 그렇게 크게 키울 때까지는 리더 자신의 역량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력이 크게 확장된 후에는 리더 혼자만의 역량으로 그 세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보다 잘 싸우는 사람, 나보다 지략을 잘 세우는 사람, 나보다 행정을 잘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잘하는 일을 하게 지원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모으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큰 조직의 리더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면서, 어쩌면 유일하게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소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싫어했다. 자신의 생각이 도전받는 것을 못 견뎌했고, 조직의 성공은 모두 ‘자신 때문’이어야 했다. 올바른 의견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의견을 좋아했고, 그래서 충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아첨꾼의 말에 쉽게 휘둘렸다.
원소의 이런 모습은 현대의 기업 리더에게서도 종종 관찰된다. 리더의 탁월한 능력으로 작은 기업이 큰 성공을 만들어 낸다. 사람이 늘어나고 사업 규모도 더 커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성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기업이 성장할 때 성과를 냈던 그 방식에서 잘 벗어나지 못한다.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모두 리더가 내리고,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점차 회사를 떠난다. 결국 실패를 거듭하던 회사는 더 진취적이고 유연한 경쟁자에게 주도권을 넘겨준다.
하북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원소의 능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크기가 달라지고 조직 주변의 상황이 달라졌다면, 과거의 성공 방정식과는 다른 새로운 성공 방정식이 필요할 수 있다. 과거의 리더십과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할 수 있다. 조직이 성장하는 동안 환경은 변화하였으며, 성장한 조직의 ‘체질’조차도 이미 과거와 같지는 않은 것이다.
악마는 폭력 속에 존재하지만, 때로는 달콤함 속에 존재하기도 한다. 성공이라는 미끼 뒤에 있는 바늘을 살피지 않는다면, 아마 그 달콤함이 마지막 달콤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