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사소한 거짓말도 불편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리더일 때는 약간의 거짓말을 사용했다. 좋게 말하면 약간의 연기를 했다. 그것이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당시 내가 했던 연기를 몇 가지 나열해 보고자 한다. 리더뿐만 아니라 실생활의 여러 커뮤니케이션에서 고려해 볼 만한 내용일 것이다.
한 팀원이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어제 생각한 아이디어를 말한다. 고양이 수집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고양이들에게 취미를 하나씩 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 아이디어는 이미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였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게임에 적용하려고 이미 생각 중인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보통 때라면, “아, 마침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이야기했다. “아, 그거 생각도 못했는데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만약 내가 전문가 앞에서 어떤 의견을 말했는데 그 전문가가 이미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낄지 모른다. 내 전문 분야도 아닌데 아는 척했다가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의 전문 분야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팀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게 만들고 싶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것에 관해서도 솔직하고 자유롭게, 때로는 엉뚱하게 의견을 말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척을 했다. 모르는 척을 했고, 나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사람들은 내 앞에서 편하게 의견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대표님이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역시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말한다. 고양이와 개가 전쟁을 벌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고양이 수집 게임에 전쟁 콘텐츠는 어울리지 않는다. 평소라면 “우리는 여성 대상 수집 게임이어서 전쟁 콘텐츠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바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게 이야기했다.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은데요. 기획자들과 논의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더 생각해 보는 척을 했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에 대표님을 다시 찾아가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 게임은 여성 대상 수집 게임이어서 전쟁 콘텐츠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번에도 반대로 생각해 보자.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상대방이 바로 반박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 의지가 제지당했다는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상대방이 그 분야의 전문가이고, 그 사람이 친절하게 알려준 근거가 그럴듯하다고 해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앞으로는 조심해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게 될 수 있다.
나는 팀원이든, 대표든, 혹은 외부 인원이든, 누구나 내 앞에서 편하게 이야기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의견을 개진했을 때,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더 생각해 보는 척을 했다. 이것도 효과를 발휘했는지, 대표님은 종종 이상한 아이디어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
가끔은 아이디어의 내용보다, 아이디어를 말하는 ‘사람’이 더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말을 만약 내가 한다면 어떨까? 똑같은 파급력을 가질까? 아닐 것이다. 아이디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같은 아이디어를 기획자가 이야기했을 때와 프로그래머가 이야기했을 때, 받아들여지는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기획자들과 아이디어를 논의할 때는,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했다고 말하지 않고 내 생각인 척했다. PD인 나의 의견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내가 기획을 같이 이야기할 만한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꺼내진 아이디어에 관해서도 편견 없는 논의가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디어에 관한 평가가 좋으면 그 아이디어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이야기했다. 그럼으로써, 비전문가의 의견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반대로 아이디어에 관한 평가가 부정적이면 끝까지 내 생각인 척했다.
이러한 활동의 바탕에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프로젝트에 더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적극적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대화를 더 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프로젝트 리더로서의 ‘척’을 이야기했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이런 ‘척’은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를 높여준다면, 좋은 인간관계를 쌓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할 수도 있다.
1. 처음 듣는 척
전문가 앞에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을 주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게 된다.
2. 더 생각해 보는 척
어떤 의견에 바로 반박을 당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충분히 생각했다는 느낌을 주면 거절을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3. 내 생각인 척
비전문가의 의견은 종종 과소평가된다.
의견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비전문가의 의견이 더 활발하게 개진되도록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