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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Aug 09. 2021

게임 제안서에 적는 것들

제안서는 무엇인가


제안서는 말 그대로 제안을 하는 문서이며, 동시에 제안에 대해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문서이다. 회사 내부에서 의사결정자의 동의를 얻어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작성하거나, 게임 개발사가 외부 투자자나 퍼블리셔로부터 투자금이나 퍼블리싱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작성한다.

제안서는 타인의 의사결정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설득력 있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은 나보다 잘 알고 잘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분들의 글을 참고하면 된다. 이 글에서는, 설득력 있는 문서 구성이나 발표 방법 같은 것은 제쳐두고, 제안서에 어떤 내용들을 담으면 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나열해 보고자 한다.


시장이 어떤 상황에 있는가


제품(게임)을 만들고자 하면 당연히 시장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시장의 선택을 받는 제품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시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면, 어떤 제품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시장이라는 것은 고객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시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고객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임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고객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고, 어떤 기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기호가 크게 반영되는 것이 게임이다 보니, 전체 고객 집단의 특성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게임 시장이기 때문에, 전체 고객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플랫폼별, 지역별, 연령별, 성별 등으로 세분화된 시장 중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세분화된 시장 중 어떤 시장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제안서에 담아내야 한다. 예를 들면,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대한민국 모바일 게임 시장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떤 요구를 만족시키면 고객들이 제품을 소비할 것이라는 내용을 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세분화된 시장 중 어떤 시장은 아직 성장 중이고, 어떤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지, 현재 시장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한데, 고객이 충분히 많은 시장에 제품을 출시해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은 1년 이상의 제작 기간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재 시장의 크기뿐만 아니라, 게임이 출시될 시점의 크기에 대한 예측도 중요하다.


경쟁 상황은 어떤가


시장 상황에 대해 살펴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쟁 상황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된다. 우리나라 게임 시장을 예로 들면, 롤플레잉 게임은 아주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레이싱 게임의 경쟁은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 편이다. 세분화된 시장별로 경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시장의 경쟁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할 필요가 있다.

경쟁 상황에는 일단 얼마나 많은 신규 제품이 출시되고 있는지가 포함될 수 있다. 신규 제품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면 비교적 경쟁이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대신, 경쟁에서 살아남았을 때 큰 이익이 돌아오는 시장이라는 증거도 된다.

상위권에 존재하는 게임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 지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상위권에 존재하는 게임이 자주 바뀐다면, 신규 게임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이다. 반면, 상위권에 존재하는 게임이 오랜 기간 바뀌지 않는다면, 어지간한 신규 게임은 진입하기 힘든 시장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고스톱과 포커 게임 시장이 그렇다. 상위권에 존재하는 브랜드가 1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고 있으며, 넥슨, 엔씨 같은 대형 게임 회사들에게도 진입이 쉽지 않다.(두 회사 모두 오래전에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어떤 전략을 사용할 것인가


시장의 특성과 경쟁 상황을 이해했다면 이제 전략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전략을 기술한다는 것은, 게임의 어떤 요소가 시장에서의 성공을 보장할 것인지 기술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제품의 강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한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성공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레이싱 장면의 퀄리티로 다른 레이싱 게임을 압도할 수 있다면, 그것도 큰 강점이 된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 경쟁에 참여하는 게임들의 퀄리티가 점점 비슷해지기 때문에 퀄리티만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대신, 시장을 점점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여 그것에 부응하는 강점을 만들어야 한다.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도 필요하지만,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고객을 많이 확보했다고 해서 반드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압도적으로 많이 확보하면 얘기가 다르지만) 그리고, 회사가 원하는 것은 결국 매출이기 때문에, 매출 전략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면 제안서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다만,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에 차별화가 필요한 것과 달리, 매출을 확보하는 전략에는 차별화가 거의 필요 없기 때문에, 다른 게임에 쓰이고 있는 매출 전략을 비슷하게 따라 해도 상관이 없다. 심지어는 비슷한 전략으로 매출을 잘 만들고 있는 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설득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는 것이 좋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떤 제품인가


시장과 경쟁, 전략에 대해 아무리 그럴듯하게 기술했다고 해도, 그 기술에 동의할 것인가는 제안을 받은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제안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하여 제품을 평가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을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어떤 장르의 게임인지가 필요하고, 핵심 행동이 무엇인지, 배경 스토리가 무엇인지, UX는 어떤 형태로 설계될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체적인 그래픽 콘셉트도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콘셉트 이미지를 미리 그려서 포함시킬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못하면 참고할 수 있는 다른 게임이나 콘텐츠의 이미지라도 포함시켜 두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프로토타입을 보여줄 수 있으면 더 좋은데, 프로토타입의 퀄리티가 안 좋으면 오히려 없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프로토타입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핵심적인 것을 좋은 퀄리티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잘 만들 수 있나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계획을 짜는 것도 능력이지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중요한 능력이다. 다만, 게임을 만들기 전에는 잘 만들 수 있을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게임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에 의지하게 된다. 따라서, 게임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역량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투자자나 퍼블리셔를 찾는 게임 개발사의 제안서는 대부분 이 항목을 포함하고 있는데, 스타트업의 경우 가장 리스크가 큰 것이 구성원의 역량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어필하지 못하면 투자를 받거나 퍼블리싱 계약을 하는 것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얼마만큼의 비용이 필요한가


게임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제작 비용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통해, 다른 게임들과 대략적인 비교는 할 수 있다.

게임 제작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면 인력의 규모와 소요 기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몇 명이 얼마의 기간 동안 만들어야 하는지 따져보는 것으로 비용 추산을 대신할 수 있다. 그래서 비용을 돈의 단위가 아니라 MM(mans X months) 단위로 하기도 한다.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성공하기만 하면 몇 십배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 게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용이 많이 드는 게임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아마 성공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반면, 비용이 적게 드는 게임은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회사에 타격이 적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일단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


어떤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나


목표를 기술한다는 것은 결국, 게임을 통해 회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기술하는 것이다. 제안을 받는 사람이 관심 있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무엇에 있다. 게임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무엇이 매력적이어야 제안에 동의할 것이다.

다만, 제안을 받는 사람도 게임에 대해 알 만큼은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허황된 목표를 적어 놓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목표가 허황되게 느껴지는 순간, 제안에 대한 신뢰가 크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과 전략, 게임의 콘텐츠를 통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이면서 제안을 받는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목표가 기입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


제안서를 만드는 과정은 결국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되는 제안으로 다른 사람을 공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제안서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어떤 게임으로,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하여 성공을 만들어 낼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성공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획득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제안서를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투자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프로젝트가 올바른 방향을 보고 출발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단순히 머릿속에서만 될 것 같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검토가 필요한 사항을 모두 조목조목 따져보고 나서도 성공 가능성이 충분히 점쳐지는 제품을 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어떤 시장에 어떤 목표가 존재하는지, 시장이 아직 성장하고 있는지 등을 기술한다.

경쟁

얼마나 많은 제품이 새로 나오고 있고, 시장을 지배하는 제품이 자주 바뀌고 있는지 기술한다.

전략

어떤 강점으로 고객을 확보할 것이며, 어떤 메커니즘으로 매출을 발생시킬 것인지 기술한다.

제품

어떤 제품을 만들 것인지 기술한다. 이미지나 프로토타입 등으로 시각화할 수 있으면 좋다.

역량

제품을 성공시킬 수 있는 역량이 제안자나 팀에 존재하는지 기술한다.

비용

얼마나 많은 인원을 동원하며, 얼마의 기간이 소요될지 기술한다.

목표

얼마만큼의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지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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