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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한하늘 Aug 30. 2021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자

프로토타이핑은 왜 하는가?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 속에서 진행된다. 특히, 초반에는 많은 것이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 그런 불확실성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확인되어 가고, 확실한 것으로 바뀌어 간다. 개중에는 예상과 다르더라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처음부터 예상이 충분히 되는 것이거나, 혹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주로 그렇다. 반면에, 어떤 것들은 예상과 다른 결과를 확인하게 되었을 때 프로젝트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들이 있다. 게임에서는 주로 핵심 재미에 해당하는 것이 그런 것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대전 격투 게임이라면 대전 격투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 다른 게임과는 차별화된 특징을 가진 대전 격투 게임을 만들었는데, 차별화는 되었지만 정작 격투가 재미있지 않다면 그 게임은 잘 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격투가 충분히 재미있는지, 혹은 적어도 재미있어질 여지가 있는지를 초반에 빨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진행해도 좋을지, 혹은 방향을 다시 모색해야 할지 알아낼 수 있다.

프로토타이핑에서 확인하는 것이 꼭 핵심 재미만은 아니다. 이미 핵심 재미가 확인된 콘셉트의 게임을 만들 때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인해 보기도 하고, 다른 경쟁작과 차별화된 요소를 먼저 확인해 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소들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토타이핑에는 비용이 든다


프로젝트의 핵심 요소를 먼저 검증하는 것은 결국 낭비되는 비용을 줄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프로토타이핑 자체에도 당연히 비용이 든다. 만약, 프로토타이핑에 드는 비용이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절약할 수 있는 비용보다 크다면 프로토타이핑을 진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프로토타이핑으로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명확한 것은 프로토타이핑의 비용뿐이다. 따라서, 프로토타이핑의 비용을 적게 하는 것이 프로토타이핑의 가성비를 높이는 가장 손쉬운 길이 된다. 특히,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토타이핑을 여러 번 수행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번의 프로토타이핑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빠른 방법을 사용하라


프로토타이핑에 들어가는 비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용은 바로 시간이다. 재무적인 비용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 넉넉한 조직의 경우에는 재무적인 비용의 부담이 적은 편이기도 하고, 과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재무적인 비용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간 비용이 대체로 가장 중요한 비용이 된다.

시간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신경 쓰면 좋다. 첫 번째는 빨리 구현할 수 있는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다. 요즘 모바일 게임은 대체로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게임 엔진을 사용한다. 하지만, 프로토타이핑에 굳이 이런 게임 엔진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C++, C#, Python으로 간단히 게임의 핵심 부분을 구현해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고 액셀로 구현하거나 보드 게임으로 만들어서 플레이해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손에 익숙하고 빨리 개발할 수 있는 도구를 선정해야 한다. 그것이 실제 제품 개발에 쓰이는 도구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시간 비용을 줄이기 위한 두 번째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과감하게 희생시키는 것이다. 대전 격투 게임의 핵심 재미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프로그램을 실행하자마자 두 캐릭터가 대결하는 화면이 나타나면 될 것이다. 게임 룸에 입장하는 부분 같은 것들은 구현할 필요가 없다. 캐릭터를 변경하는 UI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간단한 키보드 조작이나 혹은 스크립트 조작으로 가능하도록 구현해도 상관없다. 캐릭터끼리 대결하는 모습만 충실히 구현해내면 된다. 캐릭터조차도 아주 멋들어지게 만들 필요는 없다. 버추얼 파이터 1 정도의 모델링 정도로도 충분하고, 텍스처는 대충 입혀놓거나 아예 없이도 할 수 있다. 심지어, 카드 게임 같은 경우는 그래픽 전체를 희생시키고 문자로만 진행되는 게임을 구현해도 게임의 중요한 부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소한 버그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프로토타입은 중요한 것을 빨리 확인하는데 목적이 있고, 확인하고 난 후에는 버려져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것을 완벽한 프로그램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프로그램도 80%를 완성하는 비용보다 나머지 20%를 채우는 비용이 더 클 때가 많다. 따라서, 20%의 완성도를 포기한다면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다. 물론, 중요한 부분을 확인할 때 방해가 많이 되는 부분은 고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냥 놔둬도 된다. 예를 들어, 대전 격투의 재미를 확인하는데, 30분 정도 하면 게임에 오류가 나면서 강제 종료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문제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것이 금방 끝날 것 같으면 수정을 진행해도 되지만, 수정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면 그냥 30분마다 다시 실행시켜서 확인해도 된다.


확인해야 할 것은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


빨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사소한 부분은 희생시키기도 하지만, 무조건 빠른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빨리 확인하는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프로토타이핑을 안 한 것보다 더 큰 낭패에 빠질 수 있다.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과감히 버리면서, 동시에 꼭 확인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완벽히 확인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전 격투의 재미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대전 격투 자체는 필요한 것이 모두 구현되어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확인 결과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면, 어떤 면이 재미를 반감시키는지 생각하고, 다시 수정해서 확인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먹 공격과 발차기 공격의 공격 범위, 캐릭터가 움직이는 속도, 공중으로 뛰어올랐을 때의 높이 같은 것들을 엉성하게 맞춰놓은 상태로 확인한 후에, 재미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속단하고 프로젝트 방향을 바꿔버려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수치들은 쉽게 고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주먹 공격의 사정거리를 여러 가지로 수정하면서 확인할 때, 텍스트 파일의 숫자 하나만 바꾸면 바로 적용되어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 것이 프로토타이핑의 효율을 많이 높여줄 것이다.


프로토타입을 평가할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


프로토타입은 불완전한 상태의 제품이다. 삼각형과 사각형만으로 이루어진 디펜스 게임일 수도 있고, 글자만 나오는 카드 게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행 중에 여러 가지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확인해야 하고, 완성된 제품의 모습을 상상해내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다.

게임에서 어떤 수치가 10이 나오는지 9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액션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핵심 콘텐츠가 '재미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이런 것과 많이 다르다. 재미라는 것이 숫자로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동일한 정도로 재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매우 주관적인 요소이고,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 요소다. 이런 요소를 평가할 때, 화면에 보이는 것의 퀄리티나 프로그램 동작의 편의성 같은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불완전한 제품을 보면서 판단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편이다. 불완전한 상태의 제품과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의 제품을 많이 경험해 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완성된 제품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동시에 불완전한 제품의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작업을 진행해 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사업이나 마케팅, 운영 등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쉽지 않다. 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완성된 제품을 보며 일을 하고, 완성된 제품을 보며 판단을 내리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좋은 프로토타이핑을 하고도 그것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프로토타이핑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토타이핑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것의 완성된 상태를 상상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잘 내리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불가능은 있다


'불가능은 없다'는 말처럼 무모한 말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많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일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무조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서는 안된다. 프로젝트의 목표가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최대한 가늠해보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될 때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 프로토타이핑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좋은 프로토타이핑이 되도록 노력하자. 빠르면서도 확인해야 할 것은 확실히 확인하는 프로토타이핑을 하도록 하자. 그것만으로도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


1. 프로토타이핑을 하는 이유

머릿속으로 상상한 제품의 만족도와 실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해 본 만족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프로젝트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부분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프로토타이핑에도 비용이 든다

프로토타이핑을 여러 번 수행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수행하는 것이 좋다.

3. 시간을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

빨리 구현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제품 개발에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필요하지 않은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사소한 오류는 무시하고 테스트를 진행해도 된다.

4. 확인해야 할 것은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

중요한 부분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수정하면서 확인하는 것이 편하도록 준비하면 좋다.

5. 프로토타입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완전한 상태의 제품을 보면서, 핵심 요소가 충분히 만족스러운지 평가해야 한다.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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