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년이라 불리던 3학년의 끝자락에서
"우리 과 3학년은 사망년이야."
전기공학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이 흘러 다녔다. 어려워 죽겠다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2학년 2학기부터는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전공과목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도 예외 없이 전공과목의 물살에 휩쓸리며 사망년의 해를 헤쳐가고 있었다.
전자장, 전자회로, 신호 및 시스템, 공학수학... 하나하나 어려운 과목이고, 실험과 실습이 합쳐진 과목이라 매주 작성해야 하는 보고서와 숙제량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과목은 한 학기에 시험을 다섯 번이나 봐서 눈코 뜰 새 없이 시험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교수님이 다 가르쳐 주시고, 책 보고 문제 풀면서 공부하고, 모르면 공부 잘하는 친구나 조교님께 물어보기도 하고. 잘 모르는 것을 깨달아 가며 지식을 넓히는 느낌과, 이런 것은 왜 이렇게 만들어졌구나를 이해하게 되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전공과목에 매진하다 보니 어느새 3학년 2학기. 이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그다음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친구들도 각자의 미래를 향해 고민하고 있었고, 몇몇은 이미 선택을 끝내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친구 1: "나 의대 편입 준비한다."
이 친구는 일찌감치 의학전문대학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한다. 몇 년 걸릴 수도 있으니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의학전문대학원과 기존의 의과대학이 공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의과대학으로 운영한다고 들었다.)
친구 2: "치대가 괜찮은 것 같아."
또 다른 친구는 치의학전문대학원을 목표로 하겠다고 한다. 비슷하게 치과대학의 경우에도 당시 전문대학원 시험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터라 많은 학생들이 도전하던 시점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수련 기간이 의학대학원에 비해 조금 더 짧다고 했던 것 같다.
친구 3: "변리사가 딱이야. 우리 전공 살릴 수 있고, 돈도 잘 번대."
이런 말을 하며 변리사 시험 준비에 들어간 친구도 있었다.
선배 1: "기술고시를 통해 기술직 공무원이 되는 것도 좋은 선택이야. 안정적이거든."
다른 친구들처럼 전문직도 물론 안정적이지만, 전문직이 아닌 옵션도 있다는 것을 한 선배가 조언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상당수의 동기들은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역 입대를 선택하거나,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들(주로 게임회사)에서 이미 일을 하고 있거나 입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깐, 여기서 미리 말해두자면 당시 2000년대 중반 시점, 20대 초반의 나이에서 가질 수 있는 시각에서 개인적인 가치관과 성향에 의해 고민했던 내용이다. 어떤 직업이나 분야에 대해 편견을 표현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주변에서 많이 하는 선택부터 하나씩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의학/치의학전문대학원, 변리사의 경우
당시에도 지금처럼 이곳에 들어가는 문은 바늘구멍보다 좁아 보였다. 준비하는 데는 어느 정도나 걸릴지, 시간을 많이 들이면 들어갈 수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수련 과정도 쉽지 않다는 것 역시 명백했다. 하지만 일단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만 한다면 안정적인 인생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걸리는 점이 있었다. 전기공학을 배우는 것은 나에게 참 재미있었는데, 이런 길을 선택한다면 근 2-3년 정도 재미나게 배웠던 것들을 완전히 살리는 분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변리사의 경우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느낌이었다.
기술고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역시 고시공부의 장벽은 워낙 높아 보이기도 했지만, 만약 시험을 잘 통과한다면 직업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온전히 배운 것을 살릴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게 맞을까에 대해서는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이런저런 선택지들을 정리하고 보니, 남은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1.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할 것인가
장점: 두뇌 활동이 팔팔할 때, 내가 재미를 느끼는 공학 공부를 더 심도 있게 할 수 있다. 취업은 공부를 마친 뒤에도 할 수 있다.
단점: 긴 기간 동안 어떠한 형태로든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2. 회사에 취직해서 바로 돈을 벌기 시작할 것인가
장점: 경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사회 경험을 시작할 수 있다.
단점: 만약 나중에 공부가 하고 싶어지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그 당시에는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미처 몰랐었다. (직장 생활이라는 주제는 또 다른 이야기이니 나중에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이 선택은 결국 남은 20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노후라던가 남은 여생과 같은 큰 그림까지는 미처 염두에 둘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의 범위는 넓지 않았다.
선택의 결과는 대학원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2번의 단점이 1번의 단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취업은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나이와 환경은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학부 기간 성적도 잘 나오고 재미있게 공부했기 때문에 이것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순수한 호기심으로 몰입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대학원과 더불어 추가로 선택한 것, 미국 유학
대학원을 간다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결정은 자동으로 따라온 옵션이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고, 영어를 쥐뿔도 못했던 나였지만 영어로 공부하는 경험도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할 공부였다면 그때 대학원을 선택한 것은 잘한 것 같다.
아마 대학원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언젠가 후회했을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대학원을 경험해 본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훌륭한 지도교수님과 뛰어난 동료들을 만났고, 그로 인해 생각의 범위가 넓어졌으며, 올바른 가치관과 일에 대한 철학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 혹독하게 적응하였고, 그 덕분에 다양한 문화를 배웠다.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든든히 받쳐주는 멘털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경제적 지원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문제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는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영광을 얻었고 그와 더불어 필요한 부분을 부모님께서 기꺼이 지원해 주셨는데,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낙관적이었나 싶다. 젊음의 무모함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계산 실수였을까.
대학원을 갈까, 회사를 갈까
이것은 처음으로 스스로 깊게 고민하며 내린 나의 인생에 대한 중대한 결정 중 첫 번째였다.
그때의 선택을 돌이켜보며 깨달은 것은,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중요한 것은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나의 청춘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그것을 위해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나갔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배움이 가능한 시기와 환경은 한정적이기에.
당연하게도 나의 선택은 모두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선택은 내가 스스로,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서 판단하고 선택했고, 그 책임도 오롯이 내가 가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훗날 나의 아이들이 좀 더 커서 20대가 되어 비슷한 고민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하되, 너만의 기준을 만들어서 판단해 보라고.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길에서 최선을 다하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것이며, 나는 너를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