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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에서 끝낼까, 박사까지 도전할까 - 1편

대학원에서 마주한 선택의 갈림길

by Dr Vector

갈림길에서

2010년 말, 미국의 대학 캠퍼스, 겨울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저녁이었다. 나는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내일 있을 지도교수님과의 weekly report에 대한 내용을 쓰고 있었다. 잠시 쉬려고 눈의 긴장을 풀었는데, 금세 머릿속은 시끄러워졌다.

석사 학위 수여를 몇 달 앞둔 시점. 2년간의 coursework을 거의 마무리한 상태에서, 나는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석사에서 그만 멈출 것인가, 아니면 박사학위까지 도전할 것인가.

분명 이 공부가 재미있어서 대학원에 왔다. 그 힘들다는 유학 지원을 하고, 어렵게 어드미션을 받아 그렇게 원하던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큰맘 먹고 시작한 터였다. '공부할 수 있을 때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다시 선택의 순간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가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조차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매번 선택을 앞두고 충분히 고민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조건은 완벽했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나의 상황은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유학생의 경우, 선배들 사이에서도 힘들다고 소문이 나 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지도교수님 구하기와 재정문제 해결하기였다. 어렵게 학교에 입학했지만, 학생들은 학위 과정을 지도해 주실 교수님을 찾아야 했고, 교수님들은 연구실 상황에 따라 학생 TO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었기에, 학생이 지도교수님을 찾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재정문제의 경우, 장학금이 있는 학생들은 비교적 나은 편이었는데, 학비와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내 경우에는, 박사과정 어드미션은 이미 확보된 상태였고, 운 좋게도 내가 몸담아 한껏 배울 지도교수님과 연구실도 확정되어 있었다. 교수님은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훌륭한 분이셨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지도해 주시는 분이었다. 재정적인 부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5년 장학금 중 3년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박사 학위를 마칠 때까지 research assistant 로서 충분한 재원과 기간이 확보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저절로 된 것은 아니고 이만큼 오기까지도 충분히 열심히 달려왔다. 모두가 열심히 달리는 와중에 이런 좋은 상황을 만들어내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를 찾지 못해 혹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하고 싶어도 포기하는 것이 박사과정이라고도 했는데, 나는 이미 그 어려운 문턱은 넘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보이지 않는 장벽들

비교적 많이 갖추어진 조건과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의 필수 관문, qualification exam이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인데, 우리 학교는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더군다나 나는 두 번의 기회 중, 이미 한 번 실패한 상태였고, 기회는 단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시험을 잘 통과하여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면 아주 최소한 4년은 더 공부해야 했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것이지만, 20대 중반이었던 나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넘어온 과정들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문화적인 적응이었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한다는 것,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더뎠다.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어려움이었다. 해외라고는 유럽여행 한 번 갔다 온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물 설고 말 설고 사람 설은 환경이 어떤 것인지는 겪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영어는 여전히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미국에서 살아보겠다고 했는지, 근거 없던 과거의 자신감을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저울질하는 마음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저울질이 계속되었다.


석사에서 끝내는 경우

장점은 분명했다.
어려운 qualification exam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취업을 하게 되면 당장이라도 돈을 벌 수 있었다. 더 이상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니, 인생의 다른 계획들을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 주변에 미리 취업한 친구를 보며 내심 부럽기도 했다.

단점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미국의 채용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여전히 좋지 않았다. 2009년을 거치면서 많이 좋아진 상태였긴 하지만 어려웠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앞서 선택한 결과 계획했던 나의 진로 계획을 중단하는 것 같아, 마치 패배자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박사까지 도전하는 경우

장점은 역시 매력적이었다.
Qualification exam 만 통과한다면, 큰 재정 부담 없이 원래 계획을 마무리할 수 있어 보였다. 박사와 석사는 왠지 학위의 무게가 크게 다르게 느껴졌다. 더 많이,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지도교수님과 같이 훌륭한 분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된다면 나중에 학교에 남아 학문을 더 닦을 수도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단점은 역시 현실적인 어려움이었다.
그냥 공부라는 것, 연구라는 것 그 자체로 만만치 않았다. 연구는 술술 잘 되는 게 아니라, 잘 안 되는 것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니 쉬울 리 없었다. 항상 안 되는 것 투성이었고, 실패만 반복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미국 생활에는 언제쯤 적응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고, 마음의 방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끝없는 방황의 밤들

수없는 방황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왜 고민하는 것인지조차 모르겠는 날들을 보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은 조건들, 그리고 현실적으로 나 혼자 마음속으로 느끼는 어려움들, 그 무언가가 나를 불안에 떨게 했다. 그 정체 모를 불안감에 움츠러든 수많은 밤들이 있었다.

일상생활의 작은 어려움들도 마음을 무겁게 했다. 생활방식이 전혀 맞지 않는 룸메이트와의 갈등으로 결국 홀로 자취하게 되기까지 겪었던 힘든 시간들, 차가 없어서 어디를 가려면 항상 누군가에게 라이드를 부탁해야 했던 부끄러운 순간들, 작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들려오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위축되어 갔다. '내가 과연 여기서 더 버틸 수 있을까?' '과거의 선택이 정말 옳은 걸까?' 하는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나는?'




한 줄기 빛, 친구의 말

그런 혼란의 와중에, 나는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친구도 주변에 유학을 떠난 친구들이 몇몇 있어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다.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부담, 시험에 대한 걱정, 미국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까지.

내 이야기를 얼추 들은 친구는 잠시 침묵하고는 짧게 이야기했다.

"너, 너무 힘들면 그냥 한국에 돌아와도 돼. 박사 안 해도 넌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나고 있어."

놀랍게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는 상황이었지만 친구의 그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포기하면 안 된다.' '여기서 그만두면 실패자야'라는 강박에 아마도 묶여 있었던 것 같다.


'그래, 안 해도 되지 뭐. 지금껏 잘했는걸.'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선택의 결과는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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