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결사의 다음 챕터
공학박사가 된 이유는 그다지 휘황찬란하지 않았다.
그저 어쩌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좋은 교수님과 좋은 연구 주제를 만나
어쩌다 보니 박사학위까지 마치게 됐다.
연구실에서의 시간은 의미 있었다.
명확하게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맞서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
무엇보다 내가 직접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가설을 검증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좋았다.
마치 물고기를 낚는 방법을 전수받는 느낌이랄까.
박사를 마치며 나는 꿈꿨다.
“이제는 이 경험을 세상 밖에서 써먹고 싶다.”
조금이라도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막연하지만 진지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내가 공부했던 분야는
한국의 산업계에서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고,
내가 가진 전문성을 온전히 펼칠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박사의 연구 주제는 깊지만, 동시에 좁다.
그래서 나는 더 넓은 시야를 갖기로 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즈음 우연히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분야를 알게 됐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를 정의하거나,
해결 방안을 찾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데 사용하여
실제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
바로 내가 원하던 ‘문제 해결’의 또 다른 방식이었다.
그래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의 기회를 힘들게 찾아냈다.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새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박사과정 때 훈련된 것이 있어서일지,
배움의 과정은 놀랍도록 재미있었다.
데이터라는 재료를 다듬고,
요리에 필요한 적절한 도구를 다루며,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은 연구실의 실험 설계와 다르지 않았다.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실행하고, 결론과 향후 액션을 다듬는 이 리듬은
오히려 더 즉각적이고 살아 있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도
전문성을 갈고닦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물었다.
“왜 공학박사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해요?”
나는 생각한다.
공학과 데이터사이언스 사이의 교집합은
충분히 크고, 충분히 단단하다.
그리고 그 교집합 안에서
나는 나의 문제 해결 방식을
더 현실에 가깝게, 더 실용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물론 너무 빠르게 변하는 기술의 흐름에
가끔 숨이 찰 때도 있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한다.
“뭐, 그냥 하면 되지.”
어쩌면 비슷하지만 어쩌면 다른 공학박사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내가 고민하고 겪었던 일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