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니, 나에게 이런 일이
내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니.
아직도 가끔 이 타이틀을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많은 고민 끝에 시작하기로 결정한 길이었지만,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고민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세계가 펼쳐졌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았다. 새로 입사한 곳에서는 젊고 똑똑한 동료들이 우리 팀에 가득했고, 그들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도구들과 복잡한 데이터 구조 앞에서 막막했지만, 동료들이 하나하나 친절하게 멘토링해 주었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되고, 저건 저렇게 접근해 보세요."
그들의 도움 덕분에 빠르게 실무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주간 리포트 시간이 특히 좋았다. 각자가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경험해 본 형식적인 보고 회의와는 조금 달랐다. 모든 참여자의 집중도가 높았고,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였다.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배움이었다. 긴 회의 시간이 금세 지나갈 정도로 내용이 알찼다.
회의 외에도 스터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자주 만들어졌다.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정리해서 팀원들과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같은 데이터 팀 내에서도 관심 분야는 서로 조금씩 달랐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최신 동향을, 다른 누군가는 데이터 시각화 기법을, 또 다른 사람은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 방법을, 그리고 자주 쓰는 엑셀의 함수들 중에서 유용한 것들도 소개했다. 덕분에 데이터 분야의 넓은 영역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나도 관심이 있는 부분은 직접 깊이 파고 모르는 것은 물어 가며 스스로 성장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건 일상 속 자연스러운 소통이었다. 모니터가 뚫어질 정도로 집중해서 일하다 보면 분명히 막히는 순간이 온다. 데이터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거나, 아니면 단순히 코드가 돌아가지 않을 때,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지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애매할 때. 이럴 때면 옆 동료가 여유 있어 보일 때를 노려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잠깐 이거 같이 보실 수 있어요?"
그러면 재미있는 이야기의 세계가 시작된다. 내가 무엇을 하다가 어디서 막혔는지 설명하면, 함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던진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저런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이 찾아진다. 찾아지지 않으면 그대로 다시 각자 고민하다가 또 한 번 머리를 맞댄다.
생각의 방향이 잘 맞고, 서로의 이해도가 높아서 대화가 잘 통한다는 그 느낌. 그게 너무 좋았다. 혼자였다면 몇 시간, 며칠씩 헤맸을 문제들이 15분 대화로 해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런 환경 덕분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한 지 2~3개월 만에 웬만한 실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스스로의 성장 속도에 만족했고,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약 2년 반이 흘렀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은 회사의 숙명일까. 외부 환경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우리 회사의 플래그십 상품에 직격탄을 날렸다. 메인 비즈니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능했던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지만, 함께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나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결론을 내렸다.
회사를 옮기자.
퇴사라는 것도 한 번 해보니, 두 번째는 오히려 후련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직을 결정하고 나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아마 요즘의 모든 직장인이 한 번쯤은 해봤을 고민일 것이다.
1. 다음 회사를 정하고 퇴사하기
장점: 경력 단절이 없다. 월급이 끊기는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단점: 현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른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휴가를 쪼개서 쓰거나 퇴근 후 밤 시간을 활용해야 하니 체력적 부담이 크고, 무엇보다 회사 몰래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은 마음의 부담이 있다.
2. 일단 퇴사하고 다음 회사 알아보기
장점: 눈치 보지 않고 시원하게 이직에만 집중할 수 있다.
단점: 수입이 끊긴다. 이직할 회사와의 연봉 협상에서 무조건 불리한 위치에 선다.
나의 선택은 2번, '선퇴사 후이직'이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채용 시장이 활발했고(무척 중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채용 공고가 넘쳐났다. 그 수많은 기회 중에 어디 한 곳은 나와 맞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무엇보다 맞벌이 부부였기에 한쪽의 수입이 일시적으로 끊어져도 버틸 수 있었다. 배우자와 충분히 상의하고, 자금 계획을 세운 후 내린 결정이었다. 대신 '선퇴사 후이직'의 최대 단점인 연봉 협상에서의 불리함을 최소화하고자, 동시에 여러 회사에 지원하고 채용 프로세스의 단계와 시기를 가능한 맞추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채용 공고는 많았지만, 내 경력을 잘 활용할 만한 포지션을 찾으면 막상 그리 많지도 않았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당시 내 경력 기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테마를 정해 지원할 만한 회사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 지원했고, 면접과 협상 시기를 조율하며 동시에 여러 곳을 진행했다. 최종 합격 후 연봉 협상까지 마쳤지만, 회사 분위기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한 곳도 있었다.
여러 곳을 한 라운드로 묶어, 그 라운드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다음 라운드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라운드를 거치며, 내 경력의 장점을 충분히 파악하려고 했고, 점점 면접의 스킬도 생기는 것 같았다. 매 순간순간을 노트에 기록하며 부족한 점은 보완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생각했던 리스크를 최소화하도록 충분히 계획했기 때문에 그때의 선택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직 과정을 한 번 더 경험하면서 배운 점도 많았다.
회사가 지원자를 평가하듯, 나도 면접관들의 말을 통해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면접 경험들이 각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뼘 성장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는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알았으며, 변화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이직이라는 큰 변화 앞에서도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그때의 모든 선택과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소중한 자산이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의 첫 번째 이직 이야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 앞에서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내가 이 여정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인지도 모른다.